Page 34 - 나무이야기여행_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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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향교는 원형 복원 차원에서  서무 뒤편의 민가를 매입했는데 거기에도 앞으로
            미래세대를 이어 갈 큰 은행나무 한 그루가 딱 버티고 있답니다. 이처럼 강학공간에
            은행나무를 즐겨 심는 것은 공자님의 행단 전통 외에도 장구한 지질시대에 진화를
            거듭하여 벌레를 꾀지 않은 점도 있다고 합니다. 아울러 강학 이후 급제하고 출세하면
            탐관오리가 되지 말고 바르게 살라는 의미에서 은행나무를 심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은행나무의 생명력


               은행나무는  지구상에서  소철과  메타세쿼이아와  더불어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부르지요. 백악기부터 지구상에 살아남은 나무는 오로지 은행나무 뿐입니다. 은행나무는
            암수나무가 가까이 있지 않아도 풍매화이기 때문에 바람으로 수분이 가능하답니다.
               은행나무의 생명력은 노목에도 열매가 열린다는 점이에요. 암나무이기만 하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가을 이후에 열매가 수북이 땅에 떨어지지요. 다만 먹음직한 개량종 대형

            은행알이 아니어서 요즘처럼 풍요로운 시대에는 욕심부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노목
            은행나무 아래에서 나무의 연륜을 생각하면 숙연해 지지만 발길 아래 작은 은행알은
            구미가 당기지 않고 그냥 발길에 밟히는 것이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나주향교는 서울 명륜동에 있는 성균관처럼 대성전(보물 제394호)이 앞에 있고
            명륜당이 뒤에 배치 된 전묘후학 형태로 1398년(태조 7)에 지어졌어요. 그런데 200년이
            흐른 후 임란으로 서울의 성균관 대성전이 불타자 나주 향교 대성전을 보고서 복원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나주향교는 전국에서도 그 규모가 으뜸이고 잘 보존되어 있어요.

               그러나 나무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 나주향교의 역사성보다 우선 600살이 되어가는
            대성전 앞의 은행나무가 더 관심을 끌 수밖에요. 그리고 향교에는 역시 600살이 되어가는
            명륜당 앞 비자나무도 명물이자 명목이니 모른 채 지나갈 수 없는 일이지요.


            태조 이성계 은행나무 식목설


               나주향교 은행나무가 더욱 유명해진 것은 조선의 태조 이성계(李成桂, 1335~1408,
            재위 1392~1398)가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 역사로서 이성계가
            언제, 어떤 연유로 심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어요. 다만 오래전부터 나주에서는

            그렇게 알려져 있어요.
               이성계가 금성산의 기를 최고로 받는 길지에 나무를 심은 이유는 아무래도 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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