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나무이야기여행_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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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노거수 전용 공간보다 15배에 이르는 이로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어요.
녹음수로서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어요. 어디 그뿐인가요. 아파트처럼 층층으로
빽빽이 쌓인 잎은 얼마나 많은 산소를 뿜어내고 있겠어요.
경계석 사이로는 네모꼴의 화강암 안내기단을 배치했는데 안내문으로는 검은색 돌을
끼어넣고 음각으로 새겨두었어요.
사창거리, 이 거리는 조선시대에 관곡(官穀)을 저장하던 창고인 사창(司倉)이 있어
‘사창거리’라 불렸다. 나주의 대표 민속인 ‘동·서부 줄다리기’를 위한 줄을 제작하던
곳이다.
안내석 옆의 네모난 큰 돌에는 7개의 홈구멍〔性穴, cup-mark〕이 있는데 이는
바위그림의 한 종류로서 돌의 표면에 파여 있는 구멍을 말합니다. 홈구멍은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확인되는 선사시대의 보편적인 바위그림의
형태이지요. 심지어 유럽에서는 성혈이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제작된다고 하니 놀라운
민속이군요. 그래서 학자들은 성혈이 신앙의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고 있어요.
즉, 선사시대에 가장 큰 토속 신앙의식은 생존을 위한 기원(祈願)으로서 신변 안전이나
식량 확보라고 보는 거지요. 그런데 이곳의 일곱 성혈은 나란히, 그리고 깊게 파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옛 바위가 아니고 현대식 기술로 옛 신앙의식을 반영한 것 같아요.
이곳에서는 매년 정월이면 나주의 동부와 서부로 편을 나눠 줄다리기 시합을 하였는데,
여기에는 부역면제권이 걸려 있었으니 큰 관심사였겠지요. 그래서 웃고 떠드는 즐거운
행사였지만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서부 줄은 남자들이, 동부 줄은
여자들이 만들었는데 총 300m에 이르렀다니 참 대단하지요.
그런데 신령스러운 금성산이 서쪽에 있어서인지 언제나 서부가 이겼다고 한답니다.
아마도 불문율로 서부쪽에 승리를 양보하면서 금성산의 산신령을 예우해 주었다는 설이
있어요. 내기에서 지고도 즐거운 축제는 분명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해학이 담겨 있다고
여겨지는군요.
그래도 임자 없는 평상에 앉아 금성산에서 불어오는 하늬바람을 맞으며 망중한을
즐긴다면 이만한 멋이 또 어디 있을까 싶어요. 그뿐만 아니라 평상에 앉아 바로 길
건너편 나지막한 담장 너머의 금성관 뒤편 쌍둥이 은행나무의 우람함과 녹음을 관조하고
음미할 수 있어요. 또한 은행나무 뒤로 금성관의 웅장함과 그 지붕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고 과거로의 상상여행을 떠난다면 찬란한 나주목의 문화와 민속, 그리고 구비 마다
역동적으로 흘러온 나주의 역사적 사건들을 그려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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