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 - 나무이야기여행_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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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시 과원동에는 보호수 세 그루가 있을 뿐입니다. 이중 두 그루는 바로 앞에서
다룬 금성관내 은행나무들입니다. 금성관 뒤 담 너머 작은 도로를 건너면 바로 도로변에
400살이 넘는 느티나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나무의 크기나 줄기 등이 빼어난 위용을
자랑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창(司倉)거리에 위치하여 정자목으로서 ‘사창거리
느티나무’로 알려졌는데, 그 정서적 가치가 대단하고 역사적 가치도 있답니다.
사창은 조선시대에 각 고을의 환곡(還穀)을 저장하여 두던 창고로 문종 원년(1451)에
설치하여 점차 확대하였으나, 환곡의 문란으로 순조 5년(1805)에 호남 호서 지방은 관찰사
재량으로 그 존폐를 결정하도록 하였어요.
환곡은 조선시대에, 곡식을 사창에 저장하였다가 백성들에게 봄에 꾸어 주고 가을에
이자를 붙여 거두던 제도 또는 그 곡식을 말합니다. 조선시대에는 환곡법이나 환곡제도에
의해 나라에서 봄에 곡식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어 구황(救荒)을 하고 가을에 약간의
이자를 보태어 거두던 법인데 뒤에 벼슬아치의 농간으로 폐해가 많아 민란이 잦자, 철종 때
폐지하였답니다.
우리나라는 근대화에 이어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되자 사창에 대해서도 아는 이가 별로
없습니다. 그 흔적도 모두 자취를 감추었구요. 나주의 사창도 6.25 때 불에 타서 사라지고
이제는 구전과 문헌으로만 전해지고 있어요.
그러나 사창과 관련된 모든 것은 사라졌지만 나주에는 사창거리에 느티나무 한 그루가
400년이 넘도록 남아 이곳이 사창거리라는 역사적 사실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곳의
조선시대 사창은 정부의 양곡창고를 뜻하는 말로, 관인들이 먹을 곡식도 보관하였어요.
이곳 사창은 관아와 시장이 가깝고, 사방으로 잘 발달된 도로가 있어 이곳에 사창이 생기게
되었지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곳 사창은 금성관 바로 뒤에 위치하고 주변으로 사통팔당 거리가
격자식으로 뻗어 있으니 이만한 교통요지가 따로 없었어요. 현재 느티나무 아래에는
안내 표지석이 조그맣게 설치되어 아는 사람의 눈으로 보자면 옛 역사가 스러진 흔적을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답니다. 옛 역사를 정확히 알 길 없는 마을 사람들은 400살이
넘은 당산나무 느티나무가 있어 당산거리라고도 부른답니다.
사창거리 느티나무 보호수는 나무높이와 수형이 크지는 않지만 외과 수술 흔적도
보이고 지지대에 의지하여 힘겹게 세월을 이겨내고 있는 모습에서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길가와 그 길가에 바짝 붙은 옛 동사무소의 낡은 벽돌집 사이에 비좁게 위치해도 소확행을
누리는 듯 합니다. 또 자연석으로 경계석을 둘러쌓아 보호구역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좌우로 4m 남짓한 좁은 공간에 큰 줄기를 묻고 살아가지만 수관 길이를 동심원으로
찍으면 반경이 10m나 되니 커다란 녹음수가 된답니다.
제1장 천년 목사 고을을 지켜온 나무 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