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나무이야기여행_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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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이구요. 모과는 생김새는 못생겼지만 다른 어떤 과일보다 쓰임새가 많고 향이 좋아 그
            생김새와는 무관하게 사람들에게 깊은 사랑을 받고 있지요.
               여기 모과나무는 가람의 기를 받아 한창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니까 아주 먼 미래가
            기대가 됩니다. 절의 마당을 돋우느라 성토를 했기 때문에 줄기의 밑둥은 지면 1m 아래
            위치합니다. 그래서 줄기가 가뭄에 목마를 일은 없을 것이라 여겨지기도 하지만 혹 뿌리가

            숨을 쉬는 데 문제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과나무와 한 구덩이에서 3~4m 간격으로 서로 의지하면서도 서로 경쟁했던 어떤
            나무는 지금은 덧없이 굵은 등걸만 처연하게 드러내고 있답니다. 한편으로는 모과나무에
            자리를 넘겨주고 등걸과 뿌리까지 모과나무에 자양분으로 거저 주고 있으니 모과나무가 한
            오백년이 아니라 천년을 이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듯해요.
               여기 모과나무는 아직 수세도 왕성하고 수형도 빼어난 청년으로 살고 있으니까
            더욱 장성하여 미륵전 정면에서 가람을 비보하고 가을이면 풍요를 더해 줄 거예요. 이
            모과나무는 좌우균형도 완벽하고 주위에 방해물도 없는 개방지라서 앞으로도 상공에서 본
            수관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절제미를 보일 것 같군요.

               모과나무는 화리목이라고 했으니 꽃과 다름없는 것으로 불리고 있는데 이 모과나무와
            미륵전 사이에는 튼실하게 자란 백일홍 나무도 나란히 산사의 화려한 정원수 구실을
            한답니다. 봄엔 모과나무의 꽃이 연한 진홍색으로 불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뜨거운 여름엔
            불타듯이 백일홍이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며 눈길을 사로잡을 것같아요.
               두 나무 사이는 13m로 이격거리가 충분하여 아직은 세력권을 두고 서로 다툴 일이 없고
            송무백열(松茂柏悅)처럼 좋아 보입니다. 서로 같은 꽃으로서 부처님의 가비를 얻고 있으니
            절 마당에 조성된 연지의 연꽃이 없는 상황에서 서로간에 욕심낼 것이 없겠지요.

               한편, 모과나무와 가장 가까이 위치한 두 기의 삼층석탑이 좌측에서 미륵전을 비보하고
            있으니 모과나무는 그들과 밤낮으로 불도를 속삭였으면 합니다. 그러면서 천년을 사는
            나무가 되었으면 합니다. 여하간 쌍석탑 중 먼 곳은 한때 사라졌지만 이제 깨끗이 신축되어
            그 자리에 다시 들어선 것도 부처님의 자비일 터이니 모과나무도 천수를 살고 나면 또 그
            자리에 동종의 모과나무가 들어서는 것이 불법의 이치가 되겠지요.
               심향사는 진짜로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미륵원’이라는 이름으로 세운 절입니다. 이웃의
            금성산 속 다보사의 원효대사 창건설은 그런 설이 있을 뿐 근거는 확실하지 않은 것과는
            다르지요. 그뿐 아니라 고려 현종 2년(1011)에 거란군의 침입으로 나주로 몽진했을 때는
            이곳에서 국태민안을 위한 기도도 올렸습니다. 강감찬장군도 이곳에서 며칠 국태민안

            기도를 올렸는데 미륵부처의 도움으로 거란군이 물러갔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답니다.
               심향사는 금성산 동쪽 산자락에 위치하여 전남 문화재자료 제88호로 지정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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