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리
- 날짜
- 2020.04.16
- 조회수
- 787
- 등록자
- 관리자
계림리 (桂林里)
본래 나주군 이로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폐합에 따라 봉산리, 중월리, 봉봉리, 봉동, 계동, 덕림리, 죽산리를 병합하여 계동과 덕림의 이름을 따서 계림리라 하여 노안면에 편입되었다.
계림1구 덕림(德林) 마을
상촌에 송씨들이 살고 있었는데 임란이후 죽산에 고흥 고씨, 압동에 장수 황씨, 하촌에 광산 노씨와 남평 문씨가 이주 정착 후 흥덕 장씨와 광산 김씨가 들어와 번창하였다. 마을가운데 최 상단에 위치하여 상촌(상촌), 대나무 산이 마을을 감싸준다 해서 죽산(竹山)이라 했으며, 마을 들 가운데 몇 호가 살고 있었는데 명칭을 압동(押洞)이라 했고, 마을 뒤 연못에 연꽃이 많이 피어있기 때문에 하촌(荷村), 화촌(花村)이라 불렀다 1914년 노안면이 되면서 4개 마을을 통합 이름을 덕림(德林)이라 부르게 되었다. 마을에 전하는 주요 지명은
강촌샘 : 마을서쪽에 있는 샘으로 장성천 가가 된다.
계두봉(鷄頭峰) : 마을뒷산이 노안면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비가오지 않을 때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에 계두봉 이라 칭한다
굽은논 : 마을 서쪽에 있는 논으로 굽게 생겼다 해서 부른다.
금봉 : 마을 뒷산
맷바리 : 제머리봉의 밑으로 마을 동북쪽에 있다.
십릿등 : 마을 동쪽에 있는 긴 등성이
앞냇갈 : 마을 앞을 흐르는 장성천을 부르는 이름
육다리 목 : 물을 여섯 곳으로 나누고, 다리가 6곳이 있다고 하여 부른 이름이다
계림2구 계동(桂洞) 마을
조선 중기 김해 김씨가 정착한 이후 장흥 고씨 진주 강씨가 입주 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 이후 나주 나씨, 나주 임씨 등이 이주하였으며 계림리(桂林里)에서 의뜸이 되는 마을로 마을 형성 당시 마을 중심지에 계수나무가 있어 계골 이라 불렀다가 계동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마을 형성 당시부터 마을에 골(溪)이 많다하여 계골, 지굴 이라 부르다가 1914년 계동(桂洞)으로 불리게 되었다. 풍수지리상으로 마을이 계수나무 형국이라 계동이라 부른다고도 한다.
본래 나주군 이로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폐합에 따라 봉산리, 중월리, 봉봉리, 봉동, 계동, 덕림리, 죽산리를 병합하여 계동과 덕림의 이름을 따서 계림리라 하여 노안면에 편입되었다.
계림1구 덕림(德林) 마을
상촌에 송씨들이 살고 있었는데 임란이후 죽산에 고흥 고씨, 압동에 장수 황씨, 하촌에 광산 노씨와 남평 문씨가 이주 정착 후 흥덕 장씨와 광산 김씨가 들어와 번창하였다. 마을가운데 최 상단에 위치하여 상촌(상촌), 대나무 산이 마을을 감싸준다 해서 죽산(竹山)이라 했으며, 마을 들 가운데 몇 호가 살고 있었는데 명칭을 압동(押洞)이라 했고, 마을 뒤 연못에 연꽃이 많이 피어있기 때문에 하촌(荷村), 화촌(花村)이라 불렀다 1914년 노안면이 되면서 4개 마을을 통합 이름을 덕림(德林)이라 부르게 되었다. 마을에 전하는 주요 지명은
강촌샘 : 마을서쪽에 있는 샘으로 장성천 가가 된다.
계두봉(鷄頭峰) : 마을뒷산이 노안면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비가오지 않을 때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에 계두봉 이라 칭한다
굽은논 : 마을 서쪽에 있는 논으로 굽게 생겼다 해서 부른다.
금봉 : 마을 뒷산
맷바리 : 제머리봉의 밑으로 마을 동북쪽에 있다.
십릿등 : 마을 동쪽에 있는 긴 등성이
앞냇갈 : 마을 앞을 흐르는 장성천을 부르는 이름
육다리 목 : 물을 여섯 곳으로 나누고, 다리가 6곳이 있다고 하여 부른 이름이다
계림2구 계동(桂洞) 마을
조선 중기 김해 김씨가 정착한 이후 장흥 고씨 진주 강씨가 입주 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 이후 나주 나씨, 나주 임씨 등이 이주하였으며 계림리(桂林里)에서 의뜸이 되는 마을로 마을 형성 당시 마을 중심지에 계수나무가 있어 계골 이라 불렀다가 계동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마을 형성 당시부터 마을에 골(溪)이 많다하여 계골, 지굴 이라 부르다가 1914년 계동(桂洞)으로 불리게 되었다. 풍수지리상으로 마을이 계수나무 형국이라 계동이라 부른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