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리
- 날짜
- 2020.04.16
- 조회수
- 738
- 등록자
- 관리자
장동리 (長洞里)
본래 나주군 복암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장림촌, 차내리, 내동과 서부면의 장지촌을 병합하여 장림촌과 내동의 이름을 따서 장동이라 하였고 노안면에 편입되었다. 장동리 78-1번지에 위치한 노안역은 1939년 5월 6일에 역무원이 배치되어 간이역으로 영업을 개시한 후 2001년 7월 10일 호남선 복선 개통으로 학산리에서 현재의 위치로 역사를 이전하였다.
장동1구 내동(內洞)마을
내동마을은 나주나씨 집성촌으로 마을사람들에 따르면 내동마을 동남부에 현재는 농경지와 야산으로 되어 있으나 설립당시 차내(구 次乃)라는 큰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의 안 동내라 하여 내동(內洞)이라 불렸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내동으로 불리고 있다.
장동2구 장림(長林)마을
금성나씨 나양승(羅良勝)이 문평면에서 거주하다 종족이 흩어지게 되었는데 이 마을의 지형을 보고 안주할 만한 곳으로 여겨 정착 하였으며 이후 여러 성씨들이 이주하였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마을의 지형이 노루와 비슷하다 하여 노루목 또는 장림(獐林)으로 불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장림(長林) 으로 바뀌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장동3구 차내(次乃)마을
진주정씨 정내성(鄭乃成)이 부친을 사별한 뒤 그의 삼형제가 분산 하였는데, 차남인 정내성이 우연히 이 고장에서 오씨의 딸을 맞아 안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하며, 마을사람들에 따르면 마을 북쪽에 구 차내(구 次乃)라는 큰 마을이 있어 여러 성씨가 거주하였는데, 폐촌(廢村)이 된 후 현재의 마을로 이거성촌(移居成村)하여 원래의 마을 이름을 따서 그대로 차내(次乃)라 호칭 하였다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마을에 처음 정착한 사람인 정내성(鄭乃成)이 차남이기 때문에 '차(次)'와 '내(乃)'를 따와 차내라 하였다고 한다.
본래 나주군 복암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장림촌, 차내리, 내동과 서부면의 장지촌을 병합하여 장림촌과 내동의 이름을 따서 장동이라 하였고 노안면에 편입되었다. 장동리 78-1번지에 위치한 노안역은 1939년 5월 6일에 역무원이 배치되어 간이역으로 영업을 개시한 후 2001년 7월 10일 호남선 복선 개통으로 학산리에서 현재의 위치로 역사를 이전하였다.
장동1구 내동(內洞)마을
내동마을은 나주나씨 집성촌으로 마을사람들에 따르면 내동마을 동남부에 현재는 농경지와 야산으로 되어 있으나 설립당시 차내(구 次乃)라는 큰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의 안 동내라 하여 내동(內洞)이라 불렸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내동으로 불리고 있다.
장동2구 장림(長林)마을
금성나씨 나양승(羅良勝)이 문평면에서 거주하다 종족이 흩어지게 되었는데 이 마을의 지형을 보고 안주할 만한 곳으로 여겨 정착 하였으며 이후 여러 성씨들이 이주하였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마을의 지형이 노루와 비슷하다 하여 노루목 또는 장림(獐林)으로 불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장림(長林) 으로 바뀌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장동3구 차내(次乃)마을
진주정씨 정내성(鄭乃成)이 부친을 사별한 뒤 그의 삼형제가 분산 하였는데, 차남인 정내성이 우연히 이 고장에서 오씨의 딸을 맞아 안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하며, 마을사람들에 따르면 마을 북쪽에 구 차내(구 次乃)라는 큰 마을이 있어 여러 성씨가 거주하였는데, 폐촌(廢村)이 된 후 현재의 마을로 이거성촌(移居成村)하여 원래의 마을 이름을 따서 그대로 차내(次乃)라 호칭 하였다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마을에 처음 정착한 사람인 정내성(鄭乃成)이 차남이기 때문에 '차(次)'와 '내(乃)'를 따와 차내라 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