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리
- 날짜
- 202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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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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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안산리 (安山里)
본래 나주군 이로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이룡리, 정교리, 대안리, 남당리, 천변리, 목동, 평산리와 금안면의 신광리, 용광리, 장자리, 월평리, 암동, 월정리를 병합하여 대안과 평산의 이름을 따서 안산리라 하였고 노안면에 편입되었다
안산1구 월평(月平) 마을
조선중기(1730)에 강릉유씨가 마을에 터를 잡아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형성하였던 것이 김해김씨가 들어와 살면서 각성이 혼합하여 거주하게 되었으며, 지형이 평야 지대에 반월형으로 생겼다하여 월평이라 불렀다고 한다.그 전에는 장자동, 엄동, 천변, 월평 등으로 4곳의 지명을 가지고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각각의 이름이 월평으로 통합되었다.
안산2구 평산(平山),대안(大安) 마을
평산마을은 김해김씨 김두삼이 노안면 안산리 솟다리에서 살다가 농경지를 따라 이마을로 이주해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그 후 광산김씨 김광칠이 이곳에 와 살게되면서 김해김씨와 광산김씨가 터전을 이루고 살고 있다. 대안마을은 약 200년 전 고흥 고씨가 농경지를 따라 이곳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사람들에 따르면 평산마을은 평평하고 보통높이의 산이 길게뻗어있어 야산(야산)마을이라 부르게되었는데 원래 야산, 신광(新光), 용광(龍光)이라는 3곳의 지명을 가지고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3곳의 지명을 통합 평산(평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대안마을은 이름을 '댕이'라고 불러오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안(大安)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주요지명이름은
남댕이고개 : 평산 서남쪽에 있던 남댕이라는 마을은 넓은 들 가운데가 되었는데 그 남댕이에서 계림리 덕림으로 가는 고개 였다.
바우배기 : 야산가까이 있는 바위로 방죽가에 두 개가 박혀 있다.
솟다리 방죽 : 오정방죽, 오정제의 옛 이름이다.
안산3구 월정(月汀) 마을
150여년 전에 장수황씨 황말과(黃末科)가 노안면 오리(五里)에서 살다가 분가하여 이곳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 구 후 윗샘 골 이란 곳에 순흥안씨 안평득(安平得)이 봉황면 와우리에서 이주 현재의 두 마을이 형성되었고 100여년 전에는 김해김씨가 터를 잡았다고 한다. 윗마을에 들 샘이 하나 있는데 이 샘이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대한불갈(大旱不渴)'의 유명한 샘이라 하여 '샘골'아라 불렀으며, 아랫마을은 마을 중심부에 ?萱? 돌다리가 있어 광교(廣橋)라 불렀다고 하는데 넓은 들 가운데 있다고 해서 '넙다리' 라고도 했다고 한다. 이 길이 예전에는 나주에서 한양으로 가는 유일한 소로였다. 그 뒤 윗마을은 병풍 산이 있다하여 월산(月山)이라 했고, 아래 마을은 반월처럼 굽어 흐르는 맑은 물가에 있다하여 월정(月汀) 이라 했는데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통합 현재 월정이라 부른다.
안산4구 이룡(二龍) 마을
김해김씨 김익현이 덕림에서 살다가 1862년 3형제가 이주하여 가히 편히 살만한 곳이라 하여 이룡 마을 중앙에 터를 잡은 뒤 다른 성씨들이 이주해와 형성되었다고 하며 마을에서 노인이 많은 개(犬)를 길렀는데 그 수가 일흔(70)마리였으므로 마을 이름을 일흔개라고 불렀다가 이룡개 라고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솟다리, 황삿터, 이룡개 등 3곳의 동리를 통합하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룡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풍수지 리상 산세가 두 갈래로 뻗어 두 마리의 용이 마을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이룡(二龍)아라 부른다고도 한다.
본래 나주군 이로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이룡리, 정교리, 대안리, 남당리, 천변리, 목동, 평산리와 금안면의 신광리, 용광리, 장자리, 월평리, 암동, 월정리를 병합하여 대안과 평산의 이름을 따서 안산리라 하였고 노안면에 편입되었다
안산1구 월평(月平) 마을
조선중기(1730)에 강릉유씨가 마을에 터를 잡아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형성하였던 것이 김해김씨가 들어와 살면서 각성이 혼합하여 거주하게 되었으며, 지형이 평야 지대에 반월형으로 생겼다하여 월평이라 불렀다고 한다.그 전에는 장자동, 엄동, 천변, 월평 등으로 4곳의 지명을 가지고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각각의 이름이 월평으로 통합되었다.
안산2구 평산(平山),대안(大安) 마을
평산마을은 김해김씨 김두삼이 노안면 안산리 솟다리에서 살다가 농경지를 따라 이마을로 이주해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그 후 광산김씨 김광칠이 이곳에 와 살게되면서 김해김씨와 광산김씨가 터전을 이루고 살고 있다. 대안마을은 약 200년 전 고흥 고씨가 농경지를 따라 이곳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사람들에 따르면 평산마을은 평평하고 보통높이의 산이 길게뻗어있어 야산(야산)마을이라 부르게되었는데 원래 야산, 신광(新光), 용광(龍光)이라는 3곳의 지명을 가지고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3곳의 지명을 통합 평산(평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대안마을은 이름을 '댕이'라고 불러오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안(大安)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주요지명이름은
남댕이고개 : 평산 서남쪽에 있던 남댕이라는 마을은 넓은 들 가운데가 되었는데 그 남댕이에서 계림리 덕림으로 가는 고개 였다.
바우배기 : 야산가까이 있는 바위로 방죽가에 두 개가 박혀 있다.
솟다리 방죽 : 오정방죽, 오정제의 옛 이름이다.
안산3구 월정(月汀) 마을
150여년 전에 장수황씨 황말과(黃末科)가 노안면 오리(五里)에서 살다가 분가하여 이곳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 구 후 윗샘 골 이란 곳에 순흥안씨 안평득(安平得)이 봉황면 와우리에서 이주 현재의 두 마을이 형성되었고 100여년 전에는 김해김씨가 터를 잡았다고 한다. 윗마을에 들 샘이 하나 있는데 이 샘이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대한불갈(大旱不渴)'의 유명한 샘이라 하여 '샘골'아라 불렀으며, 아랫마을은 마을 중심부에 ?萱? 돌다리가 있어 광교(廣橋)라 불렀다고 하는데 넓은 들 가운데 있다고 해서 '넙다리' 라고도 했다고 한다. 이 길이 예전에는 나주에서 한양으로 가는 유일한 소로였다. 그 뒤 윗마을은 병풍 산이 있다하여 월산(月山)이라 했고, 아래 마을은 반월처럼 굽어 흐르는 맑은 물가에 있다하여 월정(月汀) 이라 했는데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통합 현재 월정이라 부른다.
안산4구 이룡(二龍) 마을
김해김씨 김익현이 덕림에서 살다가 1862년 3형제가 이주하여 가히 편히 살만한 곳이라 하여 이룡 마을 중앙에 터를 잡은 뒤 다른 성씨들이 이주해와 형성되었다고 하며 마을에서 노인이 많은 개(犬)를 길렀는데 그 수가 일흔(70)마리였으므로 마을 이름을 일흔개라고 불렀다가 이룡개 라고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솟다리, 황삿터, 이룡개 등 3곳의 동리를 통합하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룡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풍수지 리상 산세가 두 갈래로 뻗어 두 마리의 용이 마을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이룡(二龍)아라 부른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