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리
- 등록일 2020.04.16 16:56
- 조회수 998
- 등록자 관리자
대도리(大道里) 1구[입석(立石),도장(道長),탄방(炭方) 마을]
마을형성
입향시조를 보면, 입석마을은 1500년 전후에 이천서씨가 처음 들어와 있으며, 도장마 을은 고려시대에 하씨, 장씨 ,이씨가 들어와 살았다고 하고, 탄방마을에는 1600년대에 금성나씨가 정착했다고 한다. 현재는 이천서씨, 전주이씨, 금성나씨, 김해김씨, 여산송 씨, 반남박씨, 남평문씨, 제주양씨 등이 살고 있다.
유래
입석마을은 세운 돌이 많아서 입석이라 이름지었고, 도장은 산골짜기 마을이라는 뜻 의 돋+안+골>돋안골>도잔골>도장골의 변화를 거쳤다고 한다. 탄방마을은 숯을 구었 던 마을이란 뜻이다. 그래서 숯 탄자를 써서 탄방이 되었다 한다.
문화유산
영모각 : 경주 이씨 이석의 재실, 모선재 : 흥덕장씨 장익의 재실
영신재 : 이천서씨 재실, 망사재 : 금성나씨 나문규의 재실
승유재 : 금성나씨 재실 : 1988년에 건립된 함평이씨 이상명의 처 최씨 기적비
충의비 : 1989년에 건립된 서상국(1880-1944)의 충의비
대도리(大道里) 2구[대장(大場), 용소(龍所), 소사(所思) 마을
마을형성
대장마을은 평해오씨가 장성에서 이 곳으로 처음 들어와 살았고, 용소마을에는 흥덕 장씨가 맨 처음들어와서 살았으며, 소사마을에는 금성나씨가 들어와 살았다고함. 현재 는 금성나씨, 함평이씨,이천서씨, 나주임씨, 김해김씨, 양성이씨, 흥덕장씨 등이 살고 있다.
유래
대장마을은 한박거리라하여 대장이라하고, 용소마을은 용사촌이라고 불리우는 용산과 바실이라고 불리우는 소사가 합해져서 이루어진 마을이다.
문화유산
금성나씨 설단 : 금성나씨 시조 나총례의 90위의 위패가 모셔져있다.
호부 행적비 : 금성나씨 나승돈의 처 밀양박씨의 효행비
나대용장군 묘소 : 삼밭골 중턱에 있다. 묘비와 석인상이 있다.
마을형성
입향시조를 보면, 입석마을은 1500년 전후에 이천서씨가 처음 들어와 있으며, 도장마 을은 고려시대에 하씨, 장씨 ,이씨가 들어와 살았다고 하고, 탄방마을에는 1600년대에 금성나씨가 정착했다고 한다. 현재는 이천서씨, 전주이씨, 금성나씨, 김해김씨, 여산송 씨, 반남박씨, 남평문씨, 제주양씨 등이 살고 있다.
유래
입석마을은 세운 돌이 많아서 입석이라 이름지었고, 도장은 산골짜기 마을이라는 뜻 의 돋+안+골>돋안골>도잔골>도장골의 변화를 거쳤다고 한다. 탄방마을은 숯을 구었 던 마을이란 뜻이다. 그래서 숯 탄자를 써서 탄방이 되었다 한다.
문화유산
영모각 : 경주 이씨 이석의 재실, 모선재 : 흥덕장씨 장익의 재실
영신재 : 이천서씨 재실, 망사재 : 금성나씨 나문규의 재실
승유재 : 금성나씨 재실 : 1988년에 건립된 함평이씨 이상명의 처 최씨 기적비
충의비 : 1989년에 건립된 서상국(1880-1944)의 충의비
대도리(大道里) 2구[대장(大場), 용소(龍所), 소사(所思) 마을
마을형성
대장마을은 평해오씨가 장성에서 이 곳으로 처음 들어와 살았고, 용소마을에는 흥덕 장씨가 맨 처음들어와서 살았으며, 소사마을에는 금성나씨가 들어와 살았다고함. 현재 는 금성나씨, 함평이씨,이천서씨, 나주임씨, 김해김씨, 양성이씨, 흥덕장씨 등이 살고 있다.
유래
대장마을은 한박거리라하여 대장이라하고, 용소마을은 용사촌이라고 불리우는 용산과 바실이라고 불리우는 소사가 합해져서 이루어진 마을이다.
문화유산
금성나씨 설단 : 금성나씨 시조 나총례의 90위의 위패가 모셔져있다.
호부 행적비 : 금성나씨 나승돈의 처 밀양박씨의 효행비
나대용장군 묘소 : 삼밭골 중턱에 있다. 묘비와 석인상이 있다.
- 담당부서 문평면 총무
- 전화 061-339-3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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