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당리
- 등록일 2020.04.16 16:54
- 조회수 1120
- 등록자 관리자
옥당리(玉堂里) 1구 [금옥(金玉) 마을]
마을형성
고려말에 김해김씨 일가가 경상도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처음 정착했다고 한다. 현재 는 김해김씨, 고성이씨, 밀양박씨, 전주이씨, 충주지씨, 제주양씨, 동복오씨 등이 살고 있다.
유래
마을 뒷산이 남도의 8대 명당의 하나이면서 이불을 덮은 산과 같다하여 이름을 이불 뫼라 불리웠고, 또 한마을은 구슬같이 맑다하여 옥정이라 하였으며, 두 마을을 합하여 금옥으로 불리우고 있음
문화유산
효경아재 : 1978년 건립된 문화유씨 재각.
영수재 : 1730년 건립되었고 1955년에 중건한 나주임씨 임탁의 재실.
이동현 공적비 : 매년 마을총회 때마다 제사를 지낸다
옥당리(玉堂里) 2구 [금당(金塘) 마을]
마을형성
입향조는 해주최씨가 제일 먼저 들어와 정착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 산에는 해주 최씨의 묘가 많이 있다. 그 후 금성나씨가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현재는 진주강씨, 금성나씨, 경주정씨, 거창신씨, 광산김씨 등이 살고 있다.
유래
마을주변에 금이 있다하여 금의집이라 하였다가 금을 체굴한다 하여 마을이름을 금당 이라 부르고 있다. 옛날에는 마을앞 도랑에서 사금이 나왔다고 해서 금당굴 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배출인물
신갑범 :전 문평면장(13대)
문화유산
우산각 : 우산각이 둘있는데, 마을 중앙에 있는 우산각으로 송죽정이라고 불리운다. 이 우산각 앞에는 송죽정 시비와 마을표석 그리고 분수대가 있다.
옥당리(玉堂里) 3구 [통문(通文) 마을]
마을형성
금성나씨 이름미상이 나주에서 살다가 부친의 가세가 어려워 형제가 흩어졌는데 그중 한사람이 이 마을에 와서 김해김씨 딸을 맞아 정착했다고 한다. 현재는 금성나씨, 함 평이씨, 광산김씨, 진주정씨, 탐진최씨, 광산탁씨. 반남박씨, 고흥유씨 등이 살고 있다
유래
예로부터 문필이 많이 나온 곳이라 하여 마을이름을 통문이라 칭함.
문화유산
고인돌 : 마을에서 학동리로 넘어가는 곳을 감냉기라고 부르는데 이곳에 5기의 고인 돌이 있다. 농악패 : 1996년 조직. 정월대보름이나 마을 경로잔치때 농악놀이를 한다.
옥당리(玉堂里) 4구 [신옥(新玉) 마을]
마을형성
입향조는 이천서씨 서영준이 1910년대 무안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정착 했다고 함. 현재는 제주양씨, 청주한씨, 부안김씨, 밀양박씨, 금성나씨, 은진송씨 등이 농업과 상업을 주로 하며, 생활하고 있다
유래
원래 통문마을에 속한 자연마을이었으나. 마을에 고막원역이 있었기에 큰 마을을 이 루어 인구가 늘어나자 1986년에 행정구역 조정으로 옥당리 4구로 분구 되면서 새로운 옥당이라 하여 신옥이라 하였다
배출인물
임종수 : 전 문평면장(9, 11대)
문화유산
고막원역 : 옥당리 1117-1번지에 위치했었으나 지금은 다시면으로 이전하였다. 호남선 복선공사로 말미암아 2001년7월10일 역이 폐쇄되었고, 2002년 역사가 헐리었다.
마을형성
고려말에 김해김씨 일가가 경상도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처음 정착했다고 한다. 현재 는 김해김씨, 고성이씨, 밀양박씨, 전주이씨, 충주지씨, 제주양씨, 동복오씨 등이 살고 있다.
유래
마을 뒷산이 남도의 8대 명당의 하나이면서 이불을 덮은 산과 같다하여 이름을 이불 뫼라 불리웠고, 또 한마을은 구슬같이 맑다하여 옥정이라 하였으며, 두 마을을 합하여 금옥으로 불리우고 있음
문화유산
효경아재 : 1978년 건립된 문화유씨 재각.
영수재 : 1730년 건립되었고 1955년에 중건한 나주임씨 임탁의 재실.
이동현 공적비 : 매년 마을총회 때마다 제사를 지낸다
옥당리(玉堂里) 2구 [금당(金塘) 마을]
마을형성
입향조는 해주최씨가 제일 먼저 들어와 정착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 산에는 해주 최씨의 묘가 많이 있다. 그 후 금성나씨가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현재는 진주강씨, 금성나씨, 경주정씨, 거창신씨, 광산김씨 등이 살고 있다.
유래
마을주변에 금이 있다하여 금의집이라 하였다가 금을 체굴한다 하여 마을이름을 금당 이라 부르고 있다. 옛날에는 마을앞 도랑에서 사금이 나왔다고 해서 금당굴 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배출인물
신갑범 :전 문평면장(13대)
문화유산
우산각 : 우산각이 둘있는데, 마을 중앙에 있는 우산각으로 송죽정이라고 불리운다. 이 우산각 앞에는 송죽정 시비와 마을표석 그리고 분수대가 있다.
옥당리(玉堂里) 3구 [통문(通文) 마을]
마을형성
금성나씨 이름미상이 나주에서 살다가 부친의 가세가 어려워 형제가 흩어졌는데 그중 한사람이 이 마을에 와서 김해김씨 딸을 맞아 정착했다고 한다. 현재는 금성나씨, 함 평이씨, 광산김씨, 진주정씨, 탐진최씨, 광산탁씨. 반남박씨, 고흥유씨 등이 살고 있다
유래
예로부터 문필이 많이 나온 곳이라 하여 마을이름을 통문이라 칭함.
문화유산
고인돌 : 마을에서 학동리로 넘어가는 곳을 감냉기라고 부르는데 이곳에 5기의 고인 돌이 있다. 농악패 : 1996년 조직. 정월대보름이나 마을 경로잔치때 농악놀이를 한다.
옥당리(玉堂里) 4구 [신옥(新玉) 마을]
마을형성
입향조는 이천서씨 서영준이 1910년대 무안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정착 했다고 함. 현재는 제주양씨, 청주한씨, 부안김씨, 밀양박씨, 금성나씨, 은진송씨 등이 농업과 상업을 주로 하며, 생활하고 있다
유래
원래 통문마을에 속한 자연마을이었으나. 마을에 고막원역이 있었기에 큰 마을을 이 루어 인구가 늘어나자 1986년에 행정구역 조정으로 옥당리 4구로 분구 되면서 새로운 옥당이라 하여 신옥이라 하였다
배출인물
임종수 : 전 문평면장(9, 11대)
문화유산
고막원역 : 옥당리 1117-1번지에 위치했었으나 지금은 다시면으로 이전하였다. 호남선 복선공사로 말미암아 2001년7월10일 역이 폐쇄되었고, 2002년 역사가 헐리었다.
- 담당부서 문평면 총무
- 전화 061-339-3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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