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방리
- 등록일 2020.04.16 14:40
- 조회수 932
- 등록자 공산면 총무
상방리1구 상구마을
마을형성 : 羅州吳氏 吳得仁이 1560년 임진왜란때 왜군을 무찌르기 위해 마을에 진을 치고 있다가 평정이 되어 후손이 머물러 살았으며 마을입구 당산나무는 그때 심었다고 한다.
지명유래 : 마을이 上理와 下理가 있었는데 三浦江으로 거북이 내려 갔다해서 하리라 했고 내려갔던 거북이 다시 올라왔다 해서 上龜理라 하였으며 마을의 세대수가 늘면서 자연히 합쳐져 上龜마을이라 하여 현재에 이르렀음.
상방리 2구 석해(石海)마을
마을형성 : 200년전 박씨라는 사람이 이곳에 처음 정착하였다고 하며 그후 장수황씨가 이곳에 정착하여 살아왔다.
지명유래 : 과거 三浦江이 마을 앞으로 흐를 당시 마을에 浦口가 設置되어 있었던 곳으로 굽이 도는 물 이 맑고 깨끗하여 이름지어 현재에 이르렀다.
천연기념물: 천연기념물 제516호 호랑가시나무
임진왜란 때 충무공을 도와 큰 공을 세운 오득린 장군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심었다 하며, 마을의 좌청룡 우백호의 지세에서 오른쪽 지세가 약하다 하여 마을입구에 숲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이 호랑가시나무와 팽나무 10여주만이 작은 숲으로 남아있다.
호랑가시나무는 호랑이가 등이 가려우면 이 나무의 잎 가시에다 문질렀다는 유래가 있는 나무로서 우리나라 남해안에 주로 자라는데, 전북 부안의 호랑가시나무군락과 광주광역시의 노거수 1주가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나 이처럼 큰 나무는 찾아보기 어려워 호랑가시나무를 대표할만한 가치가 있다.
나주 상방리 호랑가시나무는 오득린 장군이 마을에 정착하며 심었다는 유래와 마을의 기운을 돋우는 풍수적 의미도 있는 등 조상들의 생활양식을 보여주는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상방리 3구 백두(白頭)마을
마을형성 : 200년전 갑해정씨가 처음 정착한 후 潘南朴氏와 全州李氏가 이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지명유래 : 마을 뒤 백두산의 정기를 받고 큰 인물이 배출될 것이라는 풍수지리설에 마을 이름이 白頭 부락으로 지어지고, 마을앞의 호수와 병풍처럼 드리워진 白頭月夜神仙村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상방리3구 복사초리(伏蛇草理)마을
마을형성 : 200년전 海丁氏가 처음 정착하였다고 전함.
지명유래 : 공산면은 서북쪽으로 영산강이 감돌고 동남쪽으로 삼포강이 흘러 평온이 깃 드는 고장으로 동쪽의 문을 지키면 모든 악귀가 침범할 수 없는 고장으로 풀숲에 뱀이 엎드려 지킨다는 풍수지리설에 의하여 복사초리라 이름지어진 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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