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창리
- 등록일 2020.04.16 14:36
- 조회수 908
- 등록자 공산면 총무
남창리 1구 중도(中道)마을
마을형성 : 500년전 의령여씨가 이곳에 처음 정착하였다고 하며 마을 당산 나무는 이때 심었다고 전한다.
지명유래 : 中道는 中正의 도를 깨우친 선비가 가업을 발하며 급거 선도하며 살았던 곳으로 상중도 하중도가 있으며 지금은 두 마을을 합하여 中道라 청하고 있다.
남창리 2구 월호(月湖)마을
마을형성 : 300년전 반남박씨, 장수황씨가 처음 정착하였다고 전함.
지명유래 : 옛날 마을 앞에 저수지가 있었으며 일제시대 김기현 면장이 밑에 있는 鎭泉을 포함 확장(擴張)함으로서 많은 호수에서 달빛이 환하게 마을을 비추니 마을 이름이 월호라 하고 지금에 이르렀다.
남창리 3구 송산(松山)마을
마을형성 : 150년전 장수황씨가 이곳에 처음 정착하였다고 전함.
지명유래 : 마을명이 지어지기는 일제시대 治山綠化 사업을 하므로써 마을 뒷산의 소나무 숲으로 울창하여 松山이라 부르고 오늘에 이르고 있음.
★ 구수봉
구수봉 명칭은 임진왜란 때 활약했던 의병장 김덕령이 이 곳(구수봉)을 지나다 바위에 고인 물을 말에게 먹인 것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이 바위가 마치 구수(구유의 전라도 지역 사투리)같이 생겼다해 이 산을 구수봉이라 부르게 됐다.
구수봉 말발굽 바위에는 정유재란 당시 왜적 소탕에 앞장섰던 황대중 장군의 전설이 서려있다.
황 장군이 신흥마을 뒷산에서 말을 타고 가다 바위에 말발굽 자국을 남겨 그 형상이 지금까지 이어져왔으며,
산 정상에서 천혜의 영산강 풍경과 죽산보, 다시면 일대가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장승백이 마을
마을형성 : 면의 중심지로 교통의 요지이며 생활필수품의 유통센터로 1일과 6일에 5일 장이 서고 많은 사람이 모여 교 육과 행정의 중추역할을 하면서 발전하게 되었다.
지명유래 : 옛 조상들은 이정표로 十里마다 말뚝이 있는 곳에 장승을 세웠고 마을 입구에다 장승을 세 워 무사 안일을 기원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 장승 앞을 지날 때마다 소원을 기원하였으며, 장승이 서있다 하여 장승백이라 부르게 되었고 왜정 시에 토속신을 뽑아 없애고 가까운 곳(지금의 유아원자리)에 신사단을 만들어 천황에게 예배토록하여 장승 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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