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계리
- 날짜
- 2020.04.16
- 조회수
- 1045
- 등록자
- 관리자
五溪리 磻溪마을(현 오계리 2리)
김해김씨 8대조께서 해남 尹政丞 벼슬을 하다 주변 산세가 수려하고 절경에 도취되어 이 곳에 생활 터전을 닦았다고 한다. 설촌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마을 주변에 돌이 많고 맑은 물이 흘러 旱害에도 水源이 마르지 않는 곳이라 하여 돌고개(돌마을)라 하였으며 현재 반계라 불리워지고 있다
오계리 珠峯마을 (현 오계리 2리)
신라시대 국지사 玉龍子께서 砥石江을 구경하시다가 지석강 맥이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보고 주봉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다섯 마리의 용이 구슬을 탐낸다하여 주봉이라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오계리 花山마을(현 오계리 2리)
고대부터 산세가 수려하여 자연의 哲理를 감탄한 곳으로 봄이면 花蕪요 벌레가 찾아들어 선인들로부터 화산이라 전해 내려오고 있다. 화산은 산세가 수려하여 국지사 玉龍子께서 묵어 가시던 곳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오계리 五龍마을(현 오계리 3리)
백제시대(150년경) 도자기를 직접 제작하던 곳으로 최초로 진주강씨가 정착하였으며 현재는 김씨, 최씨가 혼성을 이루면서 생활하고 있다. 마을뒤의 산세가 용의 형상으로 마을을 감싸고 있으며 마을 앞에는 마치 용이 여의주를 무는 형태의 구슬峯이 있다하여 오룡이라 불려지고 있다
오계리 石峙마을(현 오계리 1리)
이 지역은 항상 수원이 풍부하고 경관이 수려하여 강태공들이 이곳을 찾아 돌바위 위에서 침어를 하였으며 돌고개가 있었다하여 석치라 불리워지고 있다.
김해김씨 8대조께서 해남 尹政丞 벼슬을 하다 주변 산세가 수려하고 절경에 도취되어 이 곳에 생활 터전을 닦았다고 한다. 설촌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마을 주변에 돌이 많고 맑은 물이 흘러 旱害에도 水源이 마르지 않는 곳이라 하여 돌고개(돌마을)라 하였으며 현재 반계라 불리워지고 있다
오계리 珠峯마을 (현 오계리 2리)
신라시대 국지사 玉龍子께서 砥石江을 구경하시다가 지석강 맥이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보고 주봉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다섯 마리의 용이 구슬을 탐낸다하여 주봉이라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오계리 花山마을(현 오계리 2리)
고대부터 산세가 수려하여 자연의 哲理를 감탄한 곳으로 봄이면 花蕪요 벌레가 찾아들어 선인들로부터 화산이라 전해 내려오고 있다. 화산은 산세가 수려하여 국지사 玉龍子께서 묵어 가시던 곳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오계리 五龍마을(현 오계리 3리)
백제시대(150년경) 도자기를 직접 제작하던 곳으로 최초로 진주강씨가 정착하였으며 현재는 김씨, 최씨가 혼성을 이루면서 생활하고 있다. 마을뒤의 산세가 용의 형상으로 마을을 감싸고 있으며 마을 앞에는 마치 용이 여의주를 무는 형태의 구슬峯이 있다하여 오룡이라 불려지고 있다
오계리 石峙마을(현 오계리 1리)
이 지역은 항상 수원이 풍부하고 경관이 수려하여 강태공들이 이곳을 찾아 돌바위 위에서 침어를 하였으며 돌고개가 있었다하여 석치라 불리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