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덕리
- 날짜
- 2020.04.16
- 조회수
- 820
- 등록자
- 관리자
흥덕리(흥덕리) 1구 [자미(자미)마을]
마을형성 : 지금으로부터 약700년전 반남박씨 벌명당이 생긴 후에 봉덕이란 마을로 불리어 내려오다 조선말엽 오일시장의 형성으로 호남지방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각광받은 후부터 시장마을로 칭하다가 현재는 자미마을로 부름.
지명유래 : 삼포강을 통해서 들어오는 수로와 나주군과 영암군이 교차되는 삼각지에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곳.
전설 : 벌명당왕벌이 살던 곳에 묘지를 택하여 반남박씨가 번성하였다고 함. 고려시대 향직의 우두머리 박응주의 자 박의는 효도가 지극하여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이웃마을에 사는 박씨 성을 가진 지관이 잡아준 자리가 의심스러워 박지관의 뒤를 따라가 자기 부인과 대화하는 말을 마루 밑에서 엿들어 지금의 벌명당의 자리에 아버지의 시신을 안장.
유물·유적 : 흥덕리 고분, 흥덕리 석실분
흥덕리(흥덕리) 2구 [부흥(부흥)마을]
마을형성 : 해주최씨 최정도가 1800년대 나주고을에서 살다가 처가가 반남면 검환에 있어 처가에 온 후 지세와 토지가 비옥하므로 본 마을에 안주하여 마을을 형성
지명유래 : 반남, 시종, 도포, 신북(4개면) 장안(오일시장) 설립시 제일 먼저 형성된다하여 장안동촌이라 부르다가 일제강점기 때는 가난을 면치 못하여 마을명을 부흥이라 칭하면 마을이 부강하게 된다하여 현재에 이름. 지금은 부흥이라함(지금도 구장터라 불리우고 있음)
배출인물: 김옥규(金玉奎, 반남면 제6대 면장)
흥덕리(흥덕리) 3구 [도남(도남)마을]
마을형성 : 문화유씨 유창술·유인석 두 형제가 영암군 신북면에 살다가 새로운 삶의 터를 찾기 위하여 이곳 도남에 이르러 정착하게 되었음.
지명유래 : 지금으로부터 약5백년전 설립된 마을로 선인들이 말을 조련시키고 인격을 수련한 곳이라 하여 일명 도마마을이라고 불리었으나 지금은 도남으로 개칭하였음.
배출인물 : 정문채(鄭文采, 본관 하동, 국회의원․반남면 제2대 면장)
흥덕리(흥덕리) 4구 [옥련(옥련)마을]
마을형성 : 하동정씨 정재강이 반남면 신촌리 성내에서 거주하다가 영암군 신북면 월지리 산소 선영 묘소를 찾아 이주하니 그 후 남평문씨 문태옥이 정착하게 되어 마을을 형성하였음.
지명유래 : 옛날에는 신북면 월지리의 중심에 위치하였다고 해서 마을명을 중촌이라고 하다가 신북면 중촌호수보다 더 많아짐으로써 반남면 초대면장이며 학자이신 금운 정순규 선생께서 마을 연정을 본따 촌명을 옥련이라 칭하였음.
마을형성 : 지금으로부터 약700년전 반남박씨 벌명당이 생긴 후에 봉덕이란 마을로 불리어 내려오다 조선말엽 오일시장의 형성으로 호남지방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각광받은 후부터 시장마을로 칭하다가 현재는 자미마을로 부름.
지명유래 : 삼포강을 통해서 들어오는 수로와 나주군과 영암군이 교차되는 삼각지에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곳.
전설 : 벌명당왕벌이 살던 곳에 묘지를 택하여 반남박씨가 번성하였다고 함. 고려시대 향직의 우두머리 박응주의 자 박의는 효도가 지극하여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이웃마을에 사는 박씨 성을 가진 지관이 잡아준 자리가 의심스러워 박지관의 뒤를 따라가 자기 부인과 대화하는 말을 마루 밑에서 엿들어 지금의 벌명당의 자리에 아버지의 시신을 안장.
유물·유적 : 흥덕리 고분, 흥덕리 석실분
흥덕리(흥덕리) 2구 [부흥(부흥)마을]
마을형성 : 해주최씨 최정도가 1800년대 나주고을에서 살다가 처가가 반남면 검환에 있어 처가에 온 후 지세와 토지가 비옥하므로 본 마을에 안주하여 마을을 형성
지명유래 : 반남, 시종, 도포, 신북(4개면) 장안(오일시장) 설립시 제일 먼저 형성된다하여 장안동촌이라 부르다가 일제강점기 때는 가난을 면치 못하여 마을명을 부흥이라 칭하면 마을이 부강하게 된다하여 현재에 이름. 지금은 부흥이라함(지금도 구장터라 불리우고 있음)
배출인물: 김옥규(金玉奎, 반남면 제6대 면장)
흥덕리(흥덕리) 3구 [도남(도남)마을]
마을형성 : 문화유씨 유창술·유인석 두 형제가 영암군 신북면에 살다가 새로운 삶의 터를 찾기 위하여 이곳 도남에 이르러 정착하게 되었음.
지명유래 : 지금으로부터 약5백년전 설립된 마을로 선인들이 말을 조련시키고 인격을 수련한 곳이라 하여 일명 도마마을이라고 불리었으나 지금은 도남으로 개칭하였음.
배출인물 : 정문채(鄭文采, 본관 하동, 국회의원․반남면 제2대 면장)
흥덕리(흥덕리) 4구 [옥련(옥련)마을]
마을형성 : 하동정씨 정재강이 반남면 신촌리 성내에서 거주하다가 영암군 신북면 월지리 산소 선영 묘소를 찾아 이주하니 그 후 남평문씨 문태옥이 정착하게 되어 마을을 형성하였음.
지명유래 : 옛날에는 신북면 월지리의 중심에 위치하였다고 해서 마을명을 중촌이라고 하다가 신북면 중촌호수보다 더 많아짐으로써 반남면 초대면장이며 학자이신 금운 정순규 선생께서 마을 연정을 본따 촌명을 옥련이라 칭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