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방리
- 날짜
- 2020.04.16
- 조회수
- 670
- 등록자
- 관리자
상방리1구 상구마을
마을형성 : 羅州吳氏 吳得仁이 1560년 임진왜란때 왜군을 무찌르기 위해 마을에 진을 치고 있다가 평정이 되어 후손이 머물러 살았으며 마을입구 당산나무는 그때 심었다고 한다.
지명유래 : 마을이 上理와 下理가 있었는데 三浦江으로 거북이 내려 갔다해서 하리라 했고 내려갔던 거북이 다시 올라왔다 해서 上龜理라 하였으며 마을의 세대수가 늘면서 자연히 합쳐져 上龜마을이라 하여 현재에 이르렀음.
상방리 2구 석해(石海)마을
마을형성 : 200년전 박씨라는 사람이 이곳에 처음 정착하였다고 하며 그후 장수황씨가 이곳에 정착하여 살아왔다.
지명유래 : 과거 三浦江이 마을 앞으로 흐를 당시 마을에 浦口가 設置되어 있었던 곳으로 굽이 도는 물 이 맑고 깨끗하여 이름지어 현재에 이르렀다.
상방리 3구 백두(白頭)마을
마을형성 : 200년전 갑해정씨가 처음 정착한 후 潘南朴氏와 全州李氏가 이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지명유래 : 마을 뒤 백두산의 정기를 받고 큰 인물이 배출될 것이라는 풍수지리설에 마을 이름이 白頭 부락으로 지어지고, 마을앞의 호수와 병풍처럼 드리워진 白頭月夜神仙村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상방리3구 복사초리(伏蛇草理)마을
마을형성 : 200년전 海丁氏가 처음 정착하였다고 전함.
지명유래 : 공산면은 서북쪽으로 영산강이 감돌고 동남쪽으로 삼포강이 흘러 평온이 깃 드는 고장으로 동쪽의 문을 지키면 모든 악귀가 침범할 수 없는 고장으로 풀숲에 뱀이 엎드려 지킨다는 풍수지리설에 의하여 복사초리라 이름지어진 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마을형성 : 羅州吳氏 吳得仁이 1560년 임진왜란때 왜군을 무찌르기 위해 마을에 진을 치고 있다가 평정이 되어 후손이 머물러 살았으며 마을입구 당산나무는 그때 심었다고 한다.
지명유래 : 마을이 上理와 下理가 있었는데 三浦江으로 거북이 내려 갔다해서 하리라 했고 내려갔던 거북이 다시 올라왔다 해서 上龜理라 하였으며 마을의 세대수가 늘면서 자연히 합쳐져 上龜마을이라 하여 현재에 이르렀음.
상방리 2구 석해(石海)마을
마을형성 : 200년전 박씨라는 사람이 이곳에 처음 정착하였다고 하며 그후 장수황씨가 이곳에 정착하여 살아왔다.
지명유래 : 과거 三浦江이 마을 앞으로 흐를 당시 마을에 浦口가 設置되어 있었던 곳으로 굽이 도는 물 이 맑고 깨끗하여 이름지어 현재에 이르렀다.
상방리 3구 백두(白頭)마을
마을형성 : 200년전 갑해정씨가 처음 정착한 후 潘南朴氏와 全州李氏가 이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지명유래 : 마을 뒤 백두산의 정기를 받고 큰 인물이 배출될 것이라는 풍수지리설에 마을 이름이 白頭 부락으로 지어지고, 마을앞의 호수와 병풍처럼 드리워진 白頭月夜神仙村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상방리3구 복사초리(伏蛇草理)마을
마을형성 : 200년전 海丁氏가 처음 정착하였다고 전함.
지명유래 : 공산면은 서북쪽으로 영산강이 감돌고 동남쪽으로 삼포강이 흘러 평온이 깃 드는 고장으로 동쪽의 문을 지키면 모든 악귀가 침범할 수 없는 고장으로 풀숲에 뱀이 엎드려 지킨다는 풍수지리설에 의하여 복사초리라 이름지어진 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