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창리
- 날짜
- 2020.04.16
- 조회수
- 663
- 등록자
- 관리자
남창리 1구 중도(中道)마을
마을형성 : 500년전 의령여씨가 이곳에 처음 정착하였다고 하며 마을 당산 나무는 이때 심었다고 전한다.
지명유래 : 中道는 中正의 도를 깨우친 선비가 가업을 발하며 급거 선도하며 살았던 곳으로 상중도 하중도가 있으며 지금은 두 마을을 합하여 中道라 청하고 있다.
남창리 2구 월호(月湖)마을
마을형성 : 300년전 반남박씨, 장수황씨가 처음 정착하였다고 전함.
지명유래 : 옛날 마을 앞에 저수지가 있었으며 일제시대 김기현 면장이 밑에 있는 鎭泉을 포함 확장(擴張)함으로서 많은 호수에서 달빛이 환하게 마을을 비추니 마을 이름이 월호라 하고 지금에 이르렀다.
남창리 3구 송산(松山)마을
마을형성 : 150년전 장수황씨가 이곳에 처음 정착하였다고 전함.
지명유래 : 마을명이 지어지기는 일제시대 治山綠化 사업을 하므로써 마을 뒷산의 소나무 숲으로 울창하여 松山이라 부르고 오늘에 이르고 있음.
금곡리 4,5구 장승백이 마을
마을형성 : 면의 중심지로 교통의 요지이며 생활필수품의 유통센터로 1일과 6일에 5일 장이 서고 많은 사람이 모여 교 육과 행정의 중추역할을 하면서 발전하게 되었다.
지명유래 : 옛 조상들은 이정표로 十里마다 말뚝이 있는 곳에 장승을 세웠고 마을 입구에다 장승을 세 워 무사 안일을 기원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 장승 앞을 지날 때마다 소원을 기원하였으며, 장승이 서있다 하여 장승백이라 부르게 되었고 왜정 시에 토속신을 뽑아 없애고 가까운 곳(지금의 유아원자리)에 신사단을 만들어 천황에게 예배토록하여 장승 이 사라졌다.
마을형성 : 500년전 의령여씨가 이곳에 처음 정착하였다고 하며 마을 당산 나무는 이때 심었다고 전한다.
지명유래 : 中道는 中正의 도를 깨우친 선비가 가업을 발하며 급거 선도하며 살았던 곳으로 상중도 하중도가 있으며 지금은 두 마을을 합하여 中道라 청하고 있다.
남창리 2구 월호(月湖)마을
마을형성 : 300년전 반남박씨, 장수황씨가 처음 정착하였다고 전함.
지명유래 : 옛날 마을 앞에 저수지가 있었으며 일제시대 김기현 면장이 밑에 있는 鎭泉을 포함 확장(擴張)함으로서 많은 호수에서 달빛이 환하게 마을을 비추니 마을 이름이 월호라 하고 지금에 이르렀다.
남창리 3구 송산(松山)마을
마을형성 : 150년전 장수황씨가 이곳에 처음 정착하였다고 전함.
지명유래 : 마을명이 지어지기는 일제시대 治山綠化 사업을 하므로써 마을 뒷산의 소나무 숲으로 울창하여 松山이라 부르고 오늘에 이르고 있음.
금곡리 4,5구 장승백이 마을
마을형성 : 면의 중심지로 교통의 요지이며 생활필수품의 유통센터로 1일과 6일에 5일 장이 서고 많은 사람이 모여 교 육과 행정의 중추역할을 하면서 발전하게 되었다.
지명유래 : 옛 조상들은 이정표로 十里마다 말뚝이 있는 곳에 장승을 세웠고 마을 입구에다 장승을 세 워 무사 안일을 기원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 장승 앞을 지날 때마다 소원을 기원하였으며, 장승이 서있다 하여 장승백이라 부르게 되었고 왜정 시에 토속신을 뽑아 없애고 가까운 곳(지금의 유아원자리)에 신사단을 만들어 천황에게 예배토록하여 장승 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