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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가 떠난 평양성은 민심은 흉흉하고 장졸들은 전의를 상실했다. 관민 모두가 왜적이 오면 피신할 생각만 하고 있었고, 성을 지키는 군사가 많도록 보이게 하기 위해 소나무에 흰 옷을 걸었다니 안타깝다. 명에 원군을 요청하는 사신을 보내는 일 외에 달리 대책이 없는 조정. 그래도 사신으로 간 이덕형의 배짱이 두둑하고 설득력있는 논리와 재주가 있어 다행이다. 죽더라도 천자의 나라에 가서 죽지 왜적의 손에 죽을 수 없다는 선조. 그러면서도 중궁과 궁녀는 줄여서라도 기어이 데리고 가겠다고 하는 데서 애처로움을 느낀다. 조선의 임금이 어찌하자고 백성을 버리고 명나라에 가서 죽겠다고 하는지 원.
하필 우기에 임금의 수라마저 제때에 챙기기 어려운 비참한 파천길, 나라와 백성이야 어찌됐던 당신의 안위만 보장받으려고 명나라에 내부하겠다는 선조. 전쟁 중에 백성은 어떻게 살길을 마련해주고, 왜군을 또 어떻게 물리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은 고사하고, 아무 대책 없이 무조건 전쟁터에서 도망가려는 군주가 기가 막힙니다. 당시의 의식 있는 신하는 모두 최흥원의 마음과 같았을 듯 합니다.
백성의 힘 추석 연휴에 ‘나훈아’ 라는 대중가수가 한마디 했다. “옛날 역사책을 보든 제가 살아오는 동안에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나라를 누가 지켰냐하면 바로 여러분이 이 나라를 지켰습니다. 유관순 누나, 진주의 논개, 윤봉길 의사, 안중근 열사 이런 분들 모두가 보통 우리 국민이었습니다.“ 라고. 1592년 임진년 음력 4월 화성(火星)이 남쪽 하늘 궁수자리를 범하는 일이 생겼다. 과연 그 조짐대로 임진 전쟁이 터졌다. 그때 이연의 나이는 40이었고 집권한 지가 25년이 넘는 그는 조선의 14대 왕 선조였다. 일본군이 쳐들어 온 지 20일 만인 5월 3일에 나라의 수도인 한양이 함락되었다. 그 사이 선조는 개성 평양 의주를 거쳐 요동으로 넘어 갈 생각을 하였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40여년 뒤 병자호란 때는 조선은 채 두 달을 버티지 못하고 청 태종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하였다. 이로써 조선은 명나라와 관계를 끊고 청나라에 복속되었으며 1895년 청일전쟁에서 청이 일본에 패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 뒤 일제에 의한 식민 지배를 거쳐 6,25 전쟁을 겪었다. 해방은 물론이려니와 6,25 전쟁 또한 미, 소, 중 등의 개입이 있었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은 국제정세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코로나로 온 세계가 어려움에 쳐해 있는 가운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지 그저 나 같은 촌놈은 답답할 뿐이다. 누가 황윤길이고 누가 김성일인지, 누가 이순신이고 누가 원균이며, 누가 유성룡이고 누가 정철인지, 누가 김천일이고 고경명이고 조헌인지? 미국은 트럼프라는 백인우월주의자가 4년을 집권 한 뒤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고, 중국은 시황제 시진핑이 대국굴기를 기치로 버티고 있으며, 러시아는 21세가 차르인 마초 푸틴이 근육을 자랑하고 있으며, 일본은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언제든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의 전환을 꾀하던 아베가 물러났지만, 그의 심복이나 다름없는 스가가 집권하였다.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 전후 교육의 혜택을 받은 인재들이 넘쳐나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어느 하나 기득권 아닌 곳 없이 한 치의 타협과 양보도 없는 갈등과 분열의 시대가 되고 말았다. 산업화, 민주화를 지나 안정기에 접어 든 지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두고 임진전쟁 전 율곡 이이의 생각처럼 경장이 필요한 시대에 정쟁으로 날이 새고, 젊은이들은 편한 과거시험에만 몰리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조선사회 전통문화와 사회풍습의 변곡점이 된 임진왜란 그 중심의 선조의 피난편을 읽으면서또 다시 많은 생각을 하게되었다. 우리가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후세에게 다시는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마라는 경고의 의미도 있을 터 그러나 우리 현실은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고 있지는 않느가? 작가님의 역사 의식을 다시 한번 음미해보는 시간이었다. 충의를 생각하라 편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들의 활약상과 그들의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우리가 꼭 알아야 할 호남의 인물들에 대해 공부 할 수 있어 좋았다.
선조에 대하여는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측면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국사 시간에 그렇게 배웠기 때문인데 이를 식민사관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는 것 같다.적어도 오늘 선조의 행각을 보면 불쌍하고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임금으로서 최선이 아니면 차선책이라도 판단을 하고 결단을 내려야 하거늘 전혀 그렇지 못했다.이순신,이항복, 이덕형, 유성룡, 정철 등 조선 오백년을 통하여도 빠지지 않는 기라성같은 신하들을 거느린 임금.그들의 건의만 잘 받아들여도 충분히 성군 소리를 들을 수 있으련만.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국경을 넘어 남의 땅 "요동으로 피난을 가겠다.""죽더라도 부모의 나라에가서 죽겠다."고 우기는 임금.이에 반하여 원군을 청하러 명나라 사신을 자청한 이항복.그러나 병판 이항복 대신 군말없이 단기로 사신을 떠나는 이덕형.이항복은 자신의 준마를 이덕형에게 내어주며 "원병을 데려오지 못하면 저승에서나 만나세." 고 하자이덕형은 "그리 된다면 살아서는 압록강을 건너지 않겠다." 고 약속한다.이처럼 눈물겨운 충신들이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하는 수 없이 분조를 만들어 세자에게 왕권 일부를 이양하고 의주로 향한다.그러나 어디를 가든지 임금을 반기는 백성들은 보이지 않는다.적어도 이때의 선조는 백성들로부터 임금대접을 받지 못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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