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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절과 의리 편을 읽고 오늘 날 우리에게 과연 충절과 의리가 남아 있는가 생각해보는 시간이되었다.오늘 각별하게 지내고 있는 강원구 박사, 의정 위승환 아우와 함께 나주에 있는 정렬사를 방문하여 문열공 건재 김천일 선생 사당을 참배하고 언양 김씨 대종회 동곡 김남전 회장님과 많은 대화를 했다.호남 최초의 의병장 김천일 선생 때문에 나주에 의병 공원이 조성되는 일은 매우 뜻 깊은 일이다.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연재되고 있는 건재 김천일 선생 일대기 영산강의 꿈에 대해 나주시민이 얼마나 관심을갖고 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나주시청에서 좀더 적극적인 홍보가 있어야 돨 것 같습니다. 건재 김천일 선생, 중봉 조헌선생, 제봉 고경명 선생 함께 추모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충절과 의리 잘읽었습니다 21편은 서산대사 휴정이 팔도에 흩어져 있는 제자들에게 보낸 격문이 압권입니다 *아,하늘의 길이 막히도다.나라의 운명이. 위태롭도다.극악무도한 적도가 하늘의 이치를 거슬어 함선 수천척으로 바다로 거너오니 그독기가 조선. 천지에 가득한지라 삼경이 함락되고 우리 선조들이. 누천년 이룬바가. 산산이 무너 지도다* 이글을 읽고 쓰는 동안 학습을 통해 배우고. 느껴온 일제에 침략당하고 지배당한 세월이 떠올라 화가난다 독일은 세계전쟁에서 피해를 끼친국가들에게 사과하고 보상을 했는데 우리의 한일관계는 적반하장이다 임진왜란의 수모를 300년이 지난 후 또다시 침략당하여 36년간 지배를 당하였으니 참으로 우리의역사는 기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제시대에도 만해한용운선생이 큰 역할을 했는데 임란때도 서산대사 사명대사 영규등 큰고승들이 나라를 지키었도다 다시는 비참한 역사가 반복되지않아야함을 되세겨봅니다
이번 21회의 제목을 '충절과 의리'로 한 것은 작가의 탁월한 선택인 것 같다.관군은 좋든 싫든 명령에 따라야 하는 피동적인 조직이라고 한다면, 의병은 본인이 스스로 선택하여 임금에 대한 충절과 동료들간의 의리를 중히 여기는 조직이다.그런 근본적인 차이로 인해 왜군과 싸우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도 한 마음으로 뭉치지 못하였던 것이다.독산성에 주둔하고 있다가 앞뒤로 공격을 받을 가능성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김천일의 나주의병군.옥천의병장 조헌에게 후방지원을 요청하러 특사를 보냈지만 도움을 받지 못한다.조헌이 김천일을 도와주기가 싫어서가 아니라 고경명과의 의리 때문이었다.고경명은 금산전투에서 사망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고경명에 대한 복수가 우선이라는 조헌을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다.조헌은 김천일과 합류하여 한양을 탈환하고 임금을 모셔와야 한다는 것에는 아무런 이의가 없는 충신이다.그러나 조헌은 여러가지로 머리가 복잡한 처지에 처해 있었다. 우선 옥천의병이 1천 7백에서 1천 명으로 줄어 있는 상태였다.관군 지휘관들 때문이다. 충청감사 윤산각은 의병들이 전공을 세우면 관군이 불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다.그래서 조헌 의병들의 부모와 처자를 잡아다 옥에 가둔 일까지 서슴치 않았다. 이에 의병들이 동요하여 일부가 흩어져 버렸던 것이다.윤선각의 지휘를 받는 충청방어사 이옥도 마찬가지다. 청주성을 탈환하였을 때 많은 곡식이 남아 있었다.조헌이 이 곡식을 난민들에게 나누어 주자고 하였으나 거절하고 불태워버리고 말았던 위인이다.관군 지휘관들의 이러한 처사를 바라보는 관군들이 무슨 충성심으로 목숨바쳐 싸우겠는가? 연전연패가 당연하다. 충절과 의리로 뭉친 의병들이 있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인 것이다.
스티브잡스와 이건희知彼知己 百戰不殆김천일이 주위 부하들과 소통하여 뜻을 모으고, 지역 지리에 익숙한 지관 김말수의 말을 참고하여 지세의 이로움을 얻고, 밤을 이용 기습작전으로 승리하였으니 天時, 地利, 人和의 전쟁 승리 세 가지 요건을제대로 활용한 의병장이라 하겠다.임진왜란 때 조선이 망하지 않은 건 크게 세 가지 요인 때문인 것 같다.첫째는 이순신이라는 불멸의 영웅이 해전의 승리를 바탕으로 일본군의 보급로를 끊어 수륙 합동 작전을 막은 것이요, 두 번째는 명나라 군대의 파견으로 인해 일본군의 북상이 막혀왕인 선조를 붙잡지 못한 것이고, 그리고 세 번째는 그 지역의 지리를 잘 아는 의병이 곳곳에서 일본군을 괴롭힘으로서 그들의 전투 속도나 대열을 흐트러뜨린 데 있는 것 같다. 임진왜란 40여년 뒤에 일어난 병자호란 때와 비교해보면 이런 사실은 확실히 알 수 있다. 바다가 없어 북쪽으로부터 내려오는 청나라의 진군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였고 인조는 남쪽으로 내려가 의지할 야 할 원군이 없었다.의병이 봉기할 시간조차 없이 인조가 붙잡혀 머리를 찧고 말았다.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 식민지, 6.25 전쟁 등을 되돌아보고 우리의 앞날을 끊임없이 고민하여야 할 것 같다. 얼마 전 중국 시진핑은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미국 제국주의를 물리친 항미원조 전쟁이라 하였다. 미국은 6.25 전쟁을 중공과 북한 공산주의를 물리친 전쟁이라 하였다. 우리는 중국도 미국도 러시아도 일본도 아닌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앞서 나가야 하지 않을까?스마트폰으로 21세기 신기원을 열었던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죽었고, 그런 애플을 따라잡아 대한민국 디지털 세상을 앞당긴 이건희 삼선 전 회장도 죽었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스마트폰 기능의 10%도 사용 못하는 50대 중반의 사회적 기저 질환자인 나 같은 사람부터뒤로 물러나야하지 않을까 싶다.20대, 30대 늦어도 40대들이 주축이 되어 대한민국을 코로나 이후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선도국가로 이끌어주었으면 하고 바래본다.21세기는 저만치 달려가고 있는데 디지털의 ‘ㄷ자도 모르고AI의 A자도 모르는 정치꾼들이 “감놔라, 배놔라” 호랭이 담배피던 시절 얘기나 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어제의 사람들이 오늘의 젊은이들을 가르치려 드는 것은 그들과 그 뒤를 따라가는 아이들의 내일을 훔치는 일이다. 나는 더욱 그렇다.-시골 보성 촌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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