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도시, 나주 역사와 현대문화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아름다움, 그속에서 주어지는 힐링

2천년 시간여행 나주, 영산강 고대문화의 중심이며 호남의 천년고도로서 유서깊은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풍요와 멋이 넘쳐납니다. 나주로 즐거운 여행을 떠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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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주학생 독립운동기념관나주학생 독립운동기념관
  • 불회사 석장승불회사 석장승
  • 구)나주잠사(나비센터)구)나주잠사(나비센터)

구 나주역사 바로 옆에는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이 있습니다.일제강점기 3대 독립운동의 하나인 11ㆍ3 학생독립운동의 발단이 된 나주역 사건의 역사적 가치를 기념하고자 건립되었으며, 기념관 내에는 나주 지역의 식민이 치하 상황, 11ㆍ27 나주농업보습학교 학생들과 나주보통학교 학생들의 만세 사건, 나주 출신 학생운동 지도자 등 일제강점기 나주의 학생독립운동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덕룡산 아래에 있는 불회사는 백제에 불교를 전래한 마라난타 스님이 최초로 세웠다고 전해지는 오래된 사찰로 유명하다. 절로 들어서는 진입로 비자나무숲을 거닐다 보면 한 쌍의 석장승을 만날 수 있다. 할아버지 장승과 할머니 장승으로 18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 대표 석장승으로 서울 인사동에 복제품이 세워져 있다. 대웅전은 뒤쪽의 동백나무 숲과 어울려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한다

1910년 나주에 일본인 센가(千賀)가 최초로 나주 잠사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고 합니다. 1928년 당시의 통계를 보면 뽕나무밭이 624정(町)으로 춘잠 2498매를 소립하여 잠견 3420석을 생산했는데, 공동판매를 해 춘잠 2525석에 120508엔, 추잠 2453석에 80012엔의 실적을 올려 당시 전라남도 내 최고치를 달성하였다. 그리고 나주에는 일본인 경영의 제사공장 2개소가 있었다. 이러한 기록을 비추어볼 때 나주는 명실공이 잠업의 중심지였는데, 일제의 제 2차 세계대전 패망 후 그들이 조선에서 물러나가고 해방 후 1950년 6.25 민족상잔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모조리 파괴되어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일제에서 해방되고 6.25이후 그 시기 나주 잠업을 다시 일으켜 세우게 되는데, 1954년 7월 당시 나주읍 금성동에 나주 잠사주식회사를 설립한 김용두씨는 일본산 기계 52대를 설치하고 가동하게 됩니다. 일제가 지배하고 운영했던 나주의 잠업을 우리 민족의 손으로 직접 운영하며 우리 농민들에게 실질적인 소득을 안겨주었던 우리 나주지역의 농업생산을 기반으로 한 중소기업이 탄생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후 이곳 잠사공장은 한때 천명이 넘는 인원이 근무를 했던 제법 건실한 공장이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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