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_성불암요정노화
- 날짜
- 2020.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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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06
- 등록자
- 관리자
成佛庵邀靜老話 (성불암요정노화)
一鳥不鳴處 일조불명처 二人相對閑 이인상대한
塵冠與法服 진관여법복 莫作兩般看 막작양반간
성불암에서 휴정 스님을 맞아 이야기하다
산새 한 마리 울지 않은 곳에서
두 사람 마주 앉아 한가로운데
속세의 의관(衣冠)과 스님의 가사를
두 쪽으로 나누어 보지를 마오.
* 휴정(休靜)은 한시대의 명승(名僧)인데 이때에 묘향산(妙香山)에 머물러 있었다. 백호공
32세때 묘향산에서 서산대사와 대화한 후 지은 시다. 휴정은 서산대사(西山大
師,1520~1604)로 속명은 최여신이며 자는 현응 호는 청허 휴정은 법명이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안주목가 이사증(李思曾)의 양자로 들어가 12세에 성균관에 들어
가 공부하였으며 15세 때 과거에 낙방 하고 전국의 여러 ᄉᆞᆯ을 유람하다 지리산에서
숭인장로(崇仁長老)의 권유로 불교를 공부 하여 1540년에 일선(一禪)에게 구족계를 받았
다. 1549년 승과에 합격하여 성교양종판사 에 올랐으나 1556년 이 직이 승려의 본분이
아니라 생각하고 사임하고 금강산 태백산 묘향산 등지로 돌아다니며 선수행과 후학 지도
에 전념하였다. 1589년 기축옥사에 누명을 쓰고 투옥 되었다가 선조의 직접 심문에 무죄
가 입증되어 석방되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승군(義僧軍)의 궐기를 호소하여 1500
명의 승군을 조직하여 평양 탈환작전에 공을 세웠으며 선조가 여러 벼슬을 내렸으나 사양
하고 제자인 유정에게 물려주고 묘향산으로 돌아갔으며 1604년 묘향산 원적암 에서 앉은
채로 입적하셨다. 1000여명의 제자가 있으나 그 중 四溟惟政, 鞭羊彦機, 逍遙太能, 靜觀一
禪 4대 제자가 조선 후기의 불교를 주도하였다.
一鳥不鳴處 일조불명처 二人相對閑 이인상대한
塵冠與法服 진관여법복 莫作兩般看 막작양반간
성불암에서 휴정 스님을 맞아 이야기하다
산새 한 마리 울지 않은 곳에서
두 사람 마주 앉아 한가로운데
속세의 의관(衣冠)과 스님의 가사를
두 쪽으로 나누어 보지를 마오.
* 휴정(休靜)은 한시대의 명승(名僧)인데 이때에 묘향산(妙香山)에 머물러 있었다. 백호공
32세때 묘향산에서 서산대사와 대화한 후 지은 시다. 휴정은 서산대사(西山大
師,1520~1604)로 속명은 최여신이며 자는 현응 호는 청허 휴정은 법명이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안주목가 이사증(李思曾)의 양자로 들어가 12세에 성균관에 들어
가 공부하였으며 15세 때 과거에 낙방 하고 전국의 여러 ᄉᆞᆯ을 유람하다 지리산에서
숭인장로(崇仁長老)의 권유로 불교를 공부 하여 1540년에 일선(一禪)에게 구족계를 받았
다. 1549년 승과에 합격하여 성교양종판사 에 올랐으나 1556년 이 직이 승려의 본분이
아니라 생각하고 사임하고 금강산 태백산 묘향산 등지로 돌아다니며 선수행과 후학 지도
에 전념하였다. 1589년 기축옥사에 누명을 쓰고 투옥 되었다가 선조의 직접 심문에 무죄
가 입증되어 석방되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승군(義僧軍)의 궐기를 호소하여 1500
명의 승군을 조직하여 평양 탈환작전에 공을 세웠으며 선조가 여러 벼슬을 내렸으나 사양
하고 제자인 유정에게 물려주고 묘향산으로 돌아갔으며 1604년 묘향산 원적암 에서 앉은
채로 입적하셨다. 1000여명의 제자가 있으나 그 중 四溟惟政, 鞭羊彦機, 逍遙太能, 靜觀一
禪 4대 제자가 조선 후기의 불교를 주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