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시_백사이항복
- 날짜
- 2020.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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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白沙 李恒福 (백사 이항복)
白湖文集 序 中 (백호문집 서 중)
余嘗與公 遇景酬唱 竊覵其所爲 先自胸中無滯礙此物屬辭
여상여공 우경수창 절한기소위 선자흉중무체애차물속사
固巳脫然超乎文字之外 而能剔去根塵 涵而揉之 故意行言從
고사탈연초호문자지외 이능척거근진 함이유지 고의행언종
渙若不思而水湧雲騰 自爲一家 若彩蜃浮海
환약불사이수용운등 자위일가 약채신부해
結成空樓 而忘乎斤斧矣 .....
결성공루 이망호근부의 .....
백호문집 서문 중에서
나는 일찍이 공과 더불어 경치를 만나 시를 수창해 봤다. 그가 시를 엮어 가는데 실로 자유롭게 문자 밖으로 초탈해서
능히 근진(根塵)의 찌꺼기를 깨끗이 털어내되 충분히 함양하고 다듬는 것이었다.
물이 샘솟듯 구름이 일어나듯 저절로 일가(一家)를 이루니, 마치 오색 신기루가 바다위에 떠서 누각이 저절로 만들어져
자귀나 도끼를 댈 여지가 없는 것 같았다......
백호공의 친구 이신 백사 이항복(1556~1618)은 백호공이 돌아가신 뒤 동생 습정공의 부탁으로
백호문집 서문을 지의시다 습정공도 돌아가셔 문집발간이 중단되었고
사촌 동생인 석촌공께서 다시 문집발간을 하실 때 백사공 집에서 앞뒤가 손상된 문집서문을 찾아
상촌 신흠께 부탁하여 앞뒤가 완성된 문집 발문이 되었다.
호가 백사인 이항복은 9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면서 한 때 부랑배로 헛되이 세월을 보내며
어머니의 속을 썩히다 어머니의 정성과 교훈에 감화돼 학업에 열중했다.
1580 년 문과에 급제했으며. 1589 년 일어난 정여립 모반사건을 수습해 평난공신이 됐다.
임진왜란 때는 선조를 의주까지 모신 공으로 오성군에 봉해졌으며 대사헌·좌의정·영의정을 지냈던
그는 1617 년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하고, 붕당 간의 세력 다툼에 관련되어 이에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된 뒤
1618 년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항복은 행주대첩으로 유명한 권율 장군의 사위이기도 하며,
50 년 동안 절친한 친구였던 이덕형과 함께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하다.
그는 한음 이덕형과 슬기롭고 재치 있는 장난을 잘해 일화를 많이 남겼으며
백호공 후손들은 백호공 큰 아드님 이신 청하공 임지께서 기축옥사에 연루되었을 때 백사공의 은혜를 입었던 것을
항상 기억하며 숭모한다.
白湖文集 序 中 (백호문집 서 중)
余嘗與公 遇景酬唱 竊覵其所爲 先自胸中無滯礙此物屬辭
여상여공 우경수창 절한기소위 선자흉중무체애차물속사
固巳脫然超乎文字之外 而能剔去根塵 涵而揉之 故意行言從
고사탈연초호문자지외 이능척거근진 함이유지 고의행언종
渙若不思而水湧雲騰 自爲一家 若彩蜃浮海
환약불사이수용운등 자위일가 약채신부해
結成空樓 而忘乎斤斧矣 .....
결성공루 이망호근부의 .....
백호문집 서문 중에서
나는 일찍이 공과 더불어 경치를 만나 시를 수창해 봤다. 그가 시를 엮어 가는데 실로 자유롭게 문자 밖으로 초탈해서
능히 근진(根塵)의 찌꺼기를 깨끗이 털어내되 충분히 함양하고 다듬는 것이었다.
물이 샘솟듯 구름이 일어나듯 저절로 일가(一家)를 이루니, 마치 오색 신기루가 바다위에 떠서 누각이 저절로 만들어져
자귀나 도끼를 댈 여지가 없는 것 같았다......
백호공의 친구 이신 백사 이항복(1556~1618)은 백호공이 돌아가신 뒤 동생 습정공의 부탁으로
백호문집 서문을 지의시다 습정공도 돌아가셔 문집발간이 중단되었고
사촌 동생인 석촌공께서 다시 문집발간을 하실 때 백사공 집에서 앞뒤가 손상된 문집서문을 찾아
상촌 신흠께 부탁하여 앞뒤가 완성된 문집 발문이 되었다.
호가 백사인 이항복은 9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면서 한 때 부랑배로 헛되이 세월을 보내며
어머니의 속을 썩히다 어머니의 정성과 교훈에 감화돼 학업에 열중했다.
1580 년 문과에 급제했으며. 1589 년 일어난 정여립 모반사건을 수습해 평난공신이 됐다.
임진왜란 때는 선조를 의주까지 모신 공으로 오성군에 봉해졌으며 대사헌·좌의정·영의정을 지냈던
그는 1617 년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하고, 붕당 간의 세력 다툼에 관련되어 이에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된 뒤
1618 년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항복은 행주대첩으로 유명한 권율 장군의 사위이기도 하며,
50 년 동안 절친한 친구였던 이덕형과 함께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하다.
그는 한음 이덕형과 슬기롭고 재치 있는 장난을 잘해 일화를 많이 남겼으며
백호공 후손들은 백호공 큰 아드님 이신 청하공 임지께서 기축옥사에 연루되었을 때 백사공의 은혜를 입었던 것을
항상 기억하며 숭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