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좋은농부' "귀농 성공하려면 절대 일확천금 꿈꾸지 마세요"
- 날짜
- 202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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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5
- 등록자
- 이명신
전남도가 최근 귀농산 어촌을 장려하고 후배 귀농산 어촌인들의 성공 정착과 귀감을 주기 위해 올해 첫 '전남도 귀농산어촌 정착 성공사례 수기 공모전'을 진행했다. 귀농산어촌 우수사례를 널리 알리고 전남도 인구유입에 매진하겠다는 취지에서 기획된 사업이다.
전남도가 진행한 이번 수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에 나주 문평면 김양수 기분좋은농부 대표의 '새로운 시작의 성공 정착'과 나주 세지면 김성종씨의 '깜깜한 밤에도 내일은 분명 해가 뜬다'가 차지했다. 우수상은 강진군 군동면 홍여신 도두맘 대표의 '희망과 열정을 품은 작두콩차, 세계를 넘보다'로 돌아갔다. 본보는 최우수상(2편)과 우수상(1편)을 차지한 수상자들의 귀농 과정에서부터 정착에 이르기 까지 성공 사례를 세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주
●준비없는 귀농…농기센터 교육으로 첫 입문
나주 문평에서 '기분좋은농부'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양수(54) 대표다. 귀농을 결심한 시기는 지난 2010년이다. 야망을 품고 내려왔건만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생활기반이 돼야 할 땅이 없었다. 직장 다니며 주말농장 형식으로 마련한 2000㎡ 땅에 뭐든지 해보겠다는 자신감만 가득했다. 그 땅을 바탕으로 소득을 올리겠다는 포부는 가망없는 헛발질이었음을 깨닫기 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터전을 잡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지 절감했다. 귀농 첫단추부터 잘못 뀄던 것. 답답했지만 손놓고 있을수 없는 일. 수소문 해가며 매물로 나온 땅을 찾아 다녔다. 나주 문평면을 중심으로 그 반경 안에서만 땅을 구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농업기술센타 장기과정교육을 신청했다. 그 교육이 지금의 '기분좋은농부'를 만들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땐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황금같은 시간이었다.
교육을 받으며 귀농한 동료들로부터 정보를 입수하고 얘기를 나눴다. 사막에서 만난 단비 같았다. 교육은 '유기농 기능사' 과정으로 친환경농업 입문과정이었다. 교육 덕택에 친환경농업을 시작하게 된 에너지원이고 저소득 친환경농업을 하면서도 버팀목이 돼 줬다.
이듬해 '품질관리사' 교육까지 2년여의 기간 동안 유기농기능사 자격증도 따냈다. 덕분에 농촌진흥청장 표창도 받았다. 그 결과가 마중물이 돼 각종 사업을 신청하고 사업영역을 확대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농사지을 땅이 없어 귀농교육을 받았는 데 그 교육이 결과적으로 성과를 거두게 됐다.
귀농 이듬해인 지난 2011년 11월 마침내 땅을 구입했다. "두 필지 땅을 따로 팔게요." 별도의 두 필지 땅을 묶어서 팔겠다는 주인의 말에 구입을 포기했는데 한 참 뒤 분할 판매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반가운 마음에 웃돈을 조금 주고 도장을 찍었다. 마침내 내 땅이 생겼다. 귀농을 꿈꾸며 설계하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아스라히 스쳐간다. 희망에 부풀어 귀농생활을 시작했지만 아뿔싸. 첫술에 배부르지 않는다는 걸 체감했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손에 흙한번 묻혀보지 않은 자가 농사를 잘 지을리가 있겠는가.
건고추농사를 지었지만 보기좋게 실패했다. 재배기술이 전무한 탓에 병과 충에 대한 구분조차 못했다. 농기센터 지도사들의 코치 덕택에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2012년 가을 첫소득을 올렸다. 친환경 건고추를 판매해서 1500만원의 수입을 올렸지만 손에 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마음을 가다듬으며 다음해 큰 돈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청양고추를 4개동(660㎡)에 심었다. 하지만 또 날벼락이 떨어졌다. 일본에서 원전사고가 났다.
원전 방류수에 수산물이 오염 됐을 지 모른다며 소비자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횟집이 직격탄을 맞았다. 청양고추 최대 소비처는 횟집이다. 금값이던 청양고추 값이 폭락했다. 인건비도 건질수 없게 됐다. 표고버섯 재배도 병행했지만 표고는 20개월이 지나야 수확이 가능하다는 점을 간과한 탓에 2013년 한해는 그렇게 절망의 해로 끝났다. 부채가 늘어 어렵게 장만한 원룸건물도, 주말텃밭도 팔아 치웠지만 부채는 줄지 않았다. 세상 죽으란 법은 없나보다. 절망 속에 빠져 있는 데 한줄기 서광이 비쳐왔다. "내 사무실 일을 좀 도와줄 수 있겠어?"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이 부탁했다. "당연히 도와 드려야죠" 그날부터 물불 가리지 않고 투잡 전선에 뛰어 들었다. 고추·양파 대신 하우스에 거봉포도를 심었다.
●친환경 고집 양파농사 '실패'
친환경농산물이 대세라지만 재배에서 생산까지 과정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체험했다.
나주 문평은 양파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친환경으로 양파농사를 짓겠다며 2년간 매달렸다. 주민들은 우려감을 표시했다. "양파농사가 얼마나 어려운데 친환경으로 지으려 하는가"라며 말렸다. 재배하며 절감했다. 양파는 비료와 물, 제초제로 키운다. 친환경으로 키우겠다며 비료도, 제초제도 쓰지 않았으니 얼마나 고생했겠는가. 잡초는 비온 뒤 죽순처럼 자라났고 각종 병충해가 창궐해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온종일 무릎으로 기어다니며 풀을 뽑았지만 양파가 잘 자랐을 리 만무했다. 자라지 못한 양파를 공판장에 헐값으로 내다 팔던 날 돌아오면서 다시는 재배하지 않겠다며 양파와의 이별을 고했다.
이 기간동안 아내와 입씨름도 많았다. 투잡하며 몸무게가 12㎏이 빠졌다. 새벽4시 농장에 나와 이마에 전등을 켜고 버섯을 땄고 선별작업을 했다. 출근했다가 돌아와 오후 10시 넘어서까지 작업했다.
표고버섯 재배를 톱밥으로 바꾸고 체험학습까지 하다보니 여력도 없었다. 다행히 2년여 투잡으로 버틴 덕택에 큰 고비를 넘겼다. 처음부터 준비를 잘했다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으며 비싼 댓가를 치렀다. 다행히 2015년부터 표고버섯 매출이 늘고 포도도 수확되면서 경제적으로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포도를 전략적으로 키우기 위해 애물단지 복숭아 나무를 뽑아내고 덕시설을 철거했다. 아내와 며칠에 걸쳐 뽑고 자르고 걷어냈다. 아내가 복숭아를 좋아해 실컷 먹게 해주겠다는 생각에 심었지만 '친환경 재배'를 추구했던 무모함 때문에 발목을 잡았다.
농업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다보니 물빠짐 공사를 하지 않아 비만 오면 첨벙첨벙 물천지가 만들어졌다. 오죽하면 물이 고여 썩은내가 진동했겠는가. 온천지에 풀이 가득했다. 2년동안 복숭아를 팔았지만 절반 이상은 벌레가 먹어 팔 수조차 없었고 급기야 복숭아 나무까지 시들시들 죽어 나갔다. 배수시설이 안돼 생육에 방해가 된 탓이다.
무지의 상태에서 귀농한 탓에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야 깨달았다. '농사를 지으려면 일확천금을 꿈꾸지 말아야' 하며 '땅과 농작물은 절대 거짓말 하지 않는다'는 점을. 포도와 무화과를 심어 욕심을 부렸고 전남농업기술원에서도 무화과를 심지 말라고 말렸건만 강행 했다가 1년도 안돼 뽑아내기도 했다. '농사는 경험'이라는 주변의 충고를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 계기다.
●원주민들과 원만한 관계 형성 '과제'
귀농후 10년 동안 산전수전을 겪었지만 여전히 주민들과 함께 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물론 예비 귀농인들에게 시행착오를 막는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됐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은 여전하다.
표고버섯 재배농가들이 공판장에서 가격 후려치기를 당하는 것을 보고 작목반을 구성했다. 생산규모를 늘려 공급라인을 확대하자는 취지였다. 초반 잘되는가 싶었다. 공급선이 확대되자 작은 그릇을 놓고 내부적인 마찰이 빈번했고 급기야 시비, 음해 등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말았다. 지금도 여전한 상황이며 그 과정에서 뼈저리게 느낀 게 있다. 귀농을 해도 이방인은 끝까지 이방인 취급을 받더라는 것을.
좋은 관계였지만 금전관계로 부딪히다보니 급기야 따돌림 당하기까지 했다. 도시생활의 삭막함이 싫어 귀농 했지만 농촌 역시 도시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전히 씁쓸하다.
●로컬푸드 직매장 활성화에 친환경농산물 인기
투잡을 마치고 농사에만 매진했다. 표고버섯을 톱밥재배로 전환해 양산체제로 바꿨다. 품질도 1등급으로 상향되면서 2018년 마침내 포도와 함께 1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마침 나주에도 로컬푸드 바람이 불었다. 직매장이 생기면서 새로운 판로가 뚫렸다. 양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형국이 됐다.
로컬푸드 직매장이 없던 시절, 명절이면 서울에서 열리는 직거래장터와 전남도, 나주시에서 마련한 임시 직거래장터를 전전하며 새벽, 야간 장거리 운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고객을 불러 모으고 덤까지 건네주며 돈을 받으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럽던지. 그 고생을 대신해 줄 로컬푸드 직매장이 생겼으니 이게 천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마치 마법처럼 그렇게 절호의 기회가 눈앞에 펼쳐졌다. 학교 급식시장에까지 진출해 서울 학교급식시장에 줄줄이 납품이 됐다.
냉난방시설 지원 덕택에 표고버섯은 자리를 잡았지만 문제는 포도였다. 친환경 거봉을 재배하다보니 기술측면에서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했다. 3300㎡에서 연간 매출 2000만원도 올리지 못했다. 품종 갱신을 하지 않다가 뒤늦게 샤인머스켓으로 갈아 탔지만 이 역시 쉽지 않았다. 심는 시기와 초기관리를 못하다보니 생육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다행히 지인의 코칭으로 성목으로 자라고 있으며 내년부터 수확이 가능하게 됐다. 지난 2019년 매출이 2억원으로 껑충 뛰었지만 이번에는 코로나19라는 복병과 맞닥뜨렸다.
다행히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도가 높아 느리지만 매출 역시 늘고 있다. 지난해 매출 2억3000만원으로 성장세를 이어갔다. 치열한 표고버섯시장 대신 목이버섯과 노랑(황금)느타리버섯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제 예비 귀농인들을 상대로 귀농선배로서 생생한 경험담과 조언을 해 줄 자신이 있다.
알차고 내실있게 운영하며 '기분좋은농부'의 자화상을 그리고 싶다. 갈길은 멀지만 주민들과 상호 협력해가며 모두가 함께 잘사는 농촌만들기에 앞장설 것임을 다짐한다.
By 박간재 기자 kanjae.park@jnilbo.com , 나주=박송엽 기자 sypark22@jnilbo.com
전남도가 진행한 이번 수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에 나주 문평면 김양수 기분좋은농부 대표의 '새로운 시작의 성공 정착'과 나주 세지면 김성종씨의 '깜깜한 밤에도 내일은 분명 해가 뜬다'가 차지했다. 우수상은 강진군 군동면 홍여신 도두맘 대표의 '희망과 열정을 품은 작두콩차, 세계를 넘보다'로 돌아갔다. 본보는 최우수상(2편)과 우수상(1편)을 차지한 수상자들의 귀농 과정에서부터 정착에 이르기 까지 성공 사례를 세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주
●준비없는 귀농…농기센터 교육으로 첫 입문
나주 문평에서 '기분좋은농부'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양수(54) 대표다. 귀농을 결심한 시기는 지난 2010년이다. 야망을 품고 내려왔건만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생활기반이 돼야 할 땅이 없었다. 직장 다니며 주말농장 형식으로 마련한 2000㎡ 땅에 뭐든지 해보겠다는 자신감만 가득했다. 그 땅을 바탕으로 소득을 올리겠다는 포부는 가망없는 헛발질이었음을 깨닫기 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터전을 잡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지 절감했다. 귀농 첫단추부터 잘못 뀄던 것. 답답했지만 손놓고 있을수 없는 일. 수소문 해가며 매물로 나온 땅을 찾아 다녔다. 나주 문평면을 중심으로 그 반경 안에서만 땅을 구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농업기술센타 장기과정교육을 신청했다. 그 교육이 지금의 '기분좋은농부'를 만들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땐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황금같은 시간이었다.
교육을 받으며 귀농한 동료들로부터 정보를 입수하고 얘기를 나눴다. 사막에서 만난 단비 같았다. 교육은 '유기농 기능사' 과정으로 친환경농업 입문과정이었다. 교육 덕택에 친환경농업을 시작하게 된 에너지원이고 저소득 친환경농업을 하면서도 버팀목이 돼 줬다.
이듬해 '품질관리사' 교육까지 2년여의 기간 동안 유기농기능사 자격증도 따냈다. 덕분에 농촌진흥청장 표창도 받았다. 그 결과가 마중물이 돼 각종 사업을 신청하고 사업영역을 확대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농사지을 땅이 없어 귀농교육을 받았는 데 그 교육이 결과적으로 성과를 거두게 됐다.
귀농 이듬해인 지난 2011년 11월 마침내 땅을 구입했다. "두 필지 땅을 따로 팔게요." 별도의 두 필지 땅을 묶어서 팔겠다는 주인의 말에 구입을 포기했는데 한 참 뒤 분할 판매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반가운 마음에 웃돈을 조금 주고 도장을 찍었다. 마침내 내 땅이 생겼다. 귀농을 꿈꾸며 설계하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아스라히 스쳐간다. 희망에 부풀어 귀농생활을 시작했지만 아뿔싸. 첫술에 배부르지 않는다는 걸 체감했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손에 흙한번 묻혀보지 않은 자가 농사를 잘 지을리가 있겠는가.
건고추농사를 지었지만 보기좋게 실패했다. 재배기술이 전무한 탓에 병과 충에 대한 구분조차 못했다. 농기센터 지도사들의 코치 덕택에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2012년 가을 첫소득을 올렸다. 친환경 건고추를 판매해서 1500만원의 수입을 올렸지만 손에 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마음을 가다듬으며 다음해 큰 돈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청양고추를 4개동(660㎡)에 심었다. 하지만 또 날벼락이 떨어졌다. 일본에서 원전사고가 났다.
원전 방류수에 수산물이 오염 됐을 지 모른다며 소비자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횟집이 직격탄을 맞았다. 청양고추 최대 소비처는 횟집이다. 금값이던 청양고추 값이 폭락했다. 인건비도 건질수 없게 됐다. 표고버섯 재배도 병행했지만 표고는 20개월이 지나야 수확이 가능하다는 점을 간과한 탓에 2013년 한해는 그렇게 절망의 해로 끝났다. 부채가 늘어 어렵게 장만한 원룸건물도, 주말텃밭도 팔아 치웠지만 부채는 줄지 않았다. 세상 죽으란 법은 없나보다. 절망 속에 빠져 있는 데 한줄기 서광이 비쳐왔다. "내 사무실 일을 좀 도와줄 수 있겠어?"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이 부탁했다. "당연히 도와 드려야죠" 그날부터 물불 가리지 않고 투잡 전선에 뛰어 들었다. 고추·양파 대신 하우스에 거봉포도를 심었다.
●친환경 고집 양파농사 '실패'
친환경농산물이 대세라지만 재배에서 생산까지 과정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체험했다.
나주 문평은 양파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친환경으로 양파농사를 짓겠다며 2년간 매달렸다. 주민들은 우려감을 표시했다. "양파농사가 얼마나 어려운데 친환경으로 지으려 하는가"라며 말렸다. 재배하며 절감했다. 양파는 비료와 물, 제초제로 키운다. 친환경으로 키우겠다며 비료도, 제초제도 쓰지 않았으니 얼마나 고생했겠는가. 잡초는 비온 뒤 죽순처럼 자라났고 각종 병충해가 창궐해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온종일 무릎으로 기어다니며 풀을 뽑았지만 양파가 잘 자랐을 리 만무했다. 자라지 못한 양파를 공판장에 헐값으로 내다 팔던 날 돌아오면서 다시는 재배하지 않겠다며 양파와의 이별을 고했다.
이 기간동안 아내와 입씨름도 많았다. 투잡하며 몸무게가 12㎏이 빠졌다. 새벽4시 농장에 나와 이마에 전등을 켜고 버섯을 땄고 선별작업을 했다. 출근했다가 돌아와 오후 10시 넘어서까지 작업했다.
표고버섯 재배를 톱밥으로 바꾸고 체험학습까지 하다보니 여력도 없었다. 다행히 2년여 투잡으로 버틴 덕택에 큰 고비를 넘겼다. 처음부터 준비를 잘했다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으며 비싼 댓가를 치렀다. 다행히 2015년부터 표고버섯 매출이 늘고 포도도 수확되면서 경제적으로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포도를 전략적으로 키우기 위해 애물단지 복숭아 나무를 뽑아내고 덕시설을 철거했다. 아내와 며칠에 걸쳐 뽑고 자르고 걷어냈다. 아내가 복숭아를 좋아해 실컷 먹게 해주겠다는 생각에 심었지만 '친환경 재배'를 추구했던 무모함 때문에 발목을 잡았다.
농업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다보니 물빠짐 공사를 하지 않아 비만 오면 첨벙첨벙 물천지가 만들어졌다. 오죽하면 물이 고여 썩은내가 진동했겠는가. 온천지에 풀이 가득했다. 2년동안 복숭아를 팔았지만 절반 이상은 벌레가 먹어 팔 수조차 없었고 급기야 복숭아 나무까지 시들시들 죽어 나갔다. 배수시설이 안돼 생육에 방해가 된 탓이다.
무지의 상태에서 귀농한 탓에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야 깨달았다. '농사를 지으려면 일확천금을 꿈꾸지 말아야' 하며 '땅과 농작물은 절대 거짓말 하지 않는다'는 점을. 포도와 무화과를 심어 욕심을 부렸고 전남농업기술원에서도 무화과를 심지 말라고 말렸건만 강행 했다가 1년도 안돼 뽑아내기도 했다. '농사는 경험'이라는 주변의 충고를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 계기다.
●원주민들과 원만한 관계 형성 '과제'
귀농후 10년 동안 산전수전을 겪었지만 여전히 주민들과 함께 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물론 예비 귀농인들에게 시행착오를 막는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됐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은 여전하다.
표고버섯 재배농가들이 공판장에서 가격 후려치기를 당하는 것을 보고 작목반을 구성했다. 생산규모를 늘려 공급라인을 확대하자는 취지였다. 초반 잘되는가 싶었다. 공급선이 확대되자 작은 그릇을 놓고 내부적인 마찰이 빈번했고 급기야 시비, 음해 등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말았다. 지금도 여전한 상황이며 그 과정에서 뼈저리게 느낀 게 있다. 귀농을 해도 이방인은 끝까지 이방인 취급을 받더라는 것을.
좋은 관계였지만 금전관계로 부딪히다보니 급기야 따돌림 당하기까지 했다. 도시생활의 삭막함이 싫어 귀농 했지만 농촌 역시 도시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전히 씁쓸하다.
●로컬푸드 직매장 활성화에 친환경농산물 인기
투잡을 마치고 농사에만 매진했다. 표고버섯을 톱밥재배로 전환해 양산체제로 바꿨다. 품질도 1등급으로 상향되면서 2018년 마침내 포도와 함께 1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마침 나주에도 로컬푸드 바람이 불었다. 직매장이 생기면서 새로운 판로가 뚫렸다. 양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형국이 됐다.
로컬푸드 직매장이 없던 시절, 명절이면 서울에서 열리는 직거래장터와 전남도, 나주시에서 마련한 임시 직거래장터를 전전하며 새벽, 야간 장거리 운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고객을 불러 모으고 덤까지 건네주며 돈을 받으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럽던지. 그 고생을 대신해 줄 로컬푸드 직매장이 생겼으니 이게 천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마치 마법처럼 그렇게 절호의 기회가 눈앞에 펼쳐졌다. 학교 급식시장에까지 진출해 서울 학교급식시장에 줄줄이 납품이 됐다.
냉난방시설 지원 덕택에 표고버섯은 자리를 잡았지만 문제는 포도였다. 친환경 거봉을 재배하다보니 기술측면에서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했다. 3300㎡에서 연간 매출 2000만원도 올리지 못했다. 품종 갱신을 하지 않다가 뒤늦게 샤인머스켓으로 갈아 탔지만 이 역시 쉽지 않았다. 심는 시기와 초기관리를 못하다보니 생육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다행히 지인의 코칭으로 성목으로 자라고 있으며 내년부터 수확이 가능하게 됐다. 지난 2019년 매출이 2억원으로 껑충 뛰었지만 이번에는 코로나19라는 복병과 맞닥뜨렸다.
다행히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도가 높아 느리지만 매출 역시 늘고 있다. 지난해 매출 2억3000만원으로 성장세를 이어갔다. 치열한 표고버섯시장 대신 목이버섯과 노랑(황금)느타리버섯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제 예비 귀농인들을 상대로 귀농선배로서 생생한 경험담과 조언을 해 줄 자신이 있다.
알차고 내실있게 운영하며 '기분좋은농부'의 자화상을 그리고 싶다. 갈길은 멀지만 주민들과 상호 협력해가며 모두가 함께 잘사는 농촌만들기에 앞장설 것임을 다짐한다.
By 박간재 기자 kanjae.park@jnilbo.com , 나주=박송엽 기자 sypark22@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