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무소득으로 버틸 수있는 자금 꼭 비축해 놓으세요"
- 날짜
- 2022.01.10
- 조회수
- 643
- 등록자
- 이명신
나주 세지면에서 멜론 농장을 운영하는 김성종(53)씨다.
귀농을 결심한 시기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설회사 근무 중 위기가 찾아왔다. 경기 고양 현장에 근무하며 주말부부로 살고 있던 시기다. 사춘기 아들을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는 아내의 말에 광주행을 택했다. 당시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 수영장 건설 현장에 근무하는 조건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가족과 함께 있게 되니 아들의 안정도 되찾았고 이내 집안이 평온해졌다.
건설회사 특성상 새벽에 원거리 운전을 할 경우 사고 위험은 물론 저가 수주로 인한 업무 스트레스, 안전사고 스트레스, 건설업계의 암울한 미래 등 악조건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던 차였다.
2014년 수영장 준공이 임박해오자 또다시 원거리 현장근무를 할 상황에 직면했다. 회사에 문의해 보니 "신규 현장이 강원도 등 원거리 지역밖에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더이상 머뭇거리고 싶지 않았다. 귀농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곧바로 구체적인 계획수립에 나섰다.
먼저 아내를 설득했다. 아내는 "5년만 더 직장생활을 한 뒤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귀농을 돕겠다"고 했다. 현재의 귀농에는 반대한다는 의미였다. 몇가지 이유를 들어 설득작업에 나섰다.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귀농해 정착하는 게 유리하고, 원거리 근무에 대한 부담감, 업무적 스트레스, 아내 직장의 불확실한 정년 등을 얘기하며 설득했죠"
귀농한 동료의 매출기준을 토대로 2년 동안 시설하우스 2동을 운영하며 연봉 3500만원의 매출이 가능하다는 점을 들려주며 집중 설득했다.
대체로 가족들은 귀농하겠다는 결정을 존중해 줬다. 아이들은 조건부 찬성에 한표 던졌다. "힘들겠지만 아빠의 선택을 존중해요. 대신 저희들은 농촌에서 일하기는 싫어요."
귀농을 하게 되면 △안정된 평생직장 △가족과 함께 △건강한 노후 등을 충족시켜 줄 것 같았다. 인터넷 귀농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지인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던 중 현장 근무 당시 동료가 귀농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봤다. 농장을 찾아가 귀농정보를 듣고 주말마다 농장을 찾아갔다. 농작업 및 시설하우스 관리 등을 꼼꼼하게 체크했다. 동료는 귀농을 권유하진 않았다.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했다. 귀농 작목도 정하지 않았기에 기본적인 흐름과 정보를 얻어가며 어깨너머로 지켜봤다.
●가족 회의 끝에 한우 대신 멜론 선택
어머니 역시 반대하지 않았지만 "많이 배워서 잘 살고 있으면서 왜 하필 귀농을 하려고 하느냐"고 했다. 처가 어르신들도 "귀농하면 가족과 함께 모여 사니 좋긴 한데 하우스 일보다 한우를 키워보는 건 어떻겠나"라고 조언했다. 가족들 의견이 한우로 모아지자 아내와 함께 축사매입을 위해 뛰어 다녔다. 하지만 축사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한우가격이 좋아 축사 매입이 어려웠고 매물 역시 거액의 자금이 들어간 축사만 나와 있었다. 한우를 길러 수익을 낼려면 최소 3년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아내 수입만으로 자녀 교육, 축사 구입, 한우 입식 등 3년간의 운영비는 턱없이 모자랐다. 처가 어르신들 역시 장성, 담양 등으로 4개월 동안 축사를 알아봤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다시 종목 변경을 논의했다. 결국 자금회전률이 좋아 수익이 좋다는 멜론으로 결정했다. 귀농인들과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정착준비를 시작했다. 헌데 이게 웬일인가. 2015년 느닷없이 귀농 바람이 불어 귀농인들이 늘면서 시설하우스 구입에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그러던 차 그 해 연말쯤 시설하우스 매물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가 1155㎡ 하우스 2동을 인수한 뒤 본격 메론 재배에 뛰어 들었다. 건설 기술자에서 귀농인으로 변신에 성공한 것. 시설하우스 매도자의 조언과 도움, 주변농가와 협력하며 연착륙에 성공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모친이 사는 마을 사람들이 "아들이 사업을 하다 망해서 고향으로도 못오고 타지역에 살면서 어머니 재산마저 탕진하고 있다더라"는 소문이 돌았던가 보다. 힘든요인은 또 있었다.
●김영란법·대통령 탄핵까지 겹쳐 소비위축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농산물을 찾는 소비자들의 발길이 뚝 끊겼고 멜론가격 역시 전년대비 1/3로 폭락했다. 설상가상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소비마저 위축돼 귀농인들을 더욱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었다. 최소한 연 3500만원의 수익은 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물거품이 됐다. 가끔 통화하는 건설회사 선배들의 "복귀하는게 어떻겠냐"는 권유는 더욱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수입이 적어 아내 도움없이는 엄청난 경영비를 감당할 수조차 없었다.
들어가는 항목을 보면 △각종 병해충 방제 1회 기본 10만원 △시설하우스 외피 비닐 1-3년 주기 교체 △고온성 작물인 탓에 동절기 엄청난 난방비 △ 작물에 투입되는 고가의 영양제 등 수 십가지가 넘는다. 영농에 실패할 경우 들어가게 될 금전적 비용에 대한 중압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재배 방법을 잘 몰라 우수품질을 생산해내는데 실패했다. 병해충에 대한 지식이 없어 방제 시기를 놓치기 일쑤였고 자경지 토양성분을 모르면서 비료를 살포했다. 매년 다르게 유행하는 병충해 탓에 작물관리 역시 어려움이 많았다.
귀농 초기 임대농기계 제도가 있어 유용하게 활용했지만 빌려 쓰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큰 맘 먹고 트랙터를 구입했다.
농사 초보자로 시작했지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서서히 농사꾼으로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기계가 고장나면 독학해가며 수리하는 등 농업실력을 향상시켜 나갔다.
전직이 건설맨이었던 만큼 전공을 살려 비용절감에도 기여하게 됐다.
시설하우스 신축할 때 도면작성 및 비교견적 검토 후 비용을 절감했으며 △전기 및 자동제어 기능 습득 후 시설관리 효율증대 △전기온풍기 설치 시 온풍기만 구입 후 전선포설 및 기계 직접설치 △각종 제어기 고장시 업체 출장서비스 보다 직접 보수로 비용절감 △고장난 기계 교체보다 부분보수 및 교체 △농기계 기본수리 습득 및 일상관리 철저로 최상의 상태유지를 통해 비용을 아껴 나갔다.
●고장 수리도 뚝딱…어엿한 귀농인으로 정착
이젠 시설하우스 유지관리에 최소의 비용을 투입하고 있으며 각종 기술을 익혀 주변 농가에도 도움을 주고 있는 어엿한 귀농인으로 활동하고 있다.자경지 토양 상태를 수시로 점검해 건강한 작물을 키우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매작기 끝날때 마다 농업기술센터 토양검정실을 찾아가 토양검정을 받는다. 토양에 필요한 시비처방 및 관리, 토양 유기물 적정 함량 유지를 위해서다. 볏짚 및 팽연왕겨 투입으로 고상·액상·기상의 비율 유지, 여름철 휴작기 녹비작물(수단그라스) 재배 등으로 시설하우스 토양을 관리하고 있다.
●하우스 6동으로 확대…후배 귀농인에 노하우 전수
시설하우스 규모도 키워 어엿한 귀농인으로 자리매김 됐다.
초창기 1155㎡(하우스 2동)로 시작해 2018년 하우스 2동 신설(1221㎡), 2021년 1155㎡ 하우스 2동 매입 등총 6동의 시설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시설하우스 4동은 친환경 무농약 재배, 2동은 GAP인증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여느 귀농인들처럼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귀농을 준비하는 후배 귀농인들에게는 실패를 최소화 할 수이는 노하우를 전수해 줄 생각이다.
초기 귀농시 무리한 투자 및 귀농 창업대출자금 투입으로 실패해 끝내 역귀농 하는 사례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실패할 경우 경제적 압박은 물론 자금 선순환 실패로 막대한 타격을 입는다.
반드시 자신의 능력에 맞는 투자규모를 정해야 한다. 2년 정도는 운영해 보고 추가 투자를 고려해야 한다. 자신의 상황에 맞는 규모의 투자 자금 없이 귀농창업자금대출만을 이용하려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창업대출금을 받아 창업할 경우 초창기엔 저리의 이자로 부담이 없지만 5년 후 원리금 상황시 까지 소득이 없을 경우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만약 아내가 직업이 있을 경우 성공 정착 후 부부가 함께 귀농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 영농 소득이 없을 때 2년 이상 버팀목(아내의 소득·여유자금 등)은 필수다. 귀농의 정석으로 염두에 두기 바란다.
현재 메론연협회 및 작목반 가입 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역 교회에 나가며 섬김과 봉사 실천에 기여하고 있다. 나주지역 마을합창단에서 노래를 배우며 취미생활을 하고 있으며 지난 2019년 나주문화예술회관 마을합창단 공연에도 출전하기도 했다.
어렵게 정착했지만 현재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처음 기대 했던 대로 경제적인 안정, 직업 스트레스 없음, 노후 일자리, 적당한 노동으로 건강유지, 작은 시작에서 규모있는 농장으로 성장, 시간 및 기회를 이용한 투자로 안정적으로 적응했다고 자평한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도 어려움을 겪는 농업인들이 많다. 최선을 다하고 있겠지만 농삿일이라는게 절대 만만치 않다는 점 절감해야 한다. 절박함이 없으면 농사는 실패한다.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각종 장애물을 현명하게 극복해야 한다. 기후 및 자연재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현재는 인력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남자들의 로망이라는 낭만적인 귀농, 현실감 없는 감상적인 귀농 계획은 자신뿐 아니라 가족, 노후 생활에도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 명심하기 바란다.
By 박간재 기자 kanjae.park@jnilbo.com , 나주=조대봉 기자 dbjo@jnilbo.com
귀농을 결심한 시기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설회사 근무 중 위기가 찾아왔다. 경기 고양 현장에 근무하며 주말부부로 살고 있던 시기다. 사춘기 아들을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는 아내의 말에 광주행을 택했다. 당시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 수영장 건설 현장에 근무하는 조건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가족과 함께 있게 되니 아들의 안정도 되찾았고 이내 집안이 평온해졌다.
건설회사 특성상 새벽에 원거리 운전을 할 경우 사고 위험은 물론 저가 수주로 인한 업무 스트레스, 안전사고 스트레스, 건설업계의 암울한 미래 등 악조건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던 차였다.
2014년 수영장 준공이 임박해오자 또다시 원거리 현장근무를 할 상황에 직면했다. 회사에 문의해 보니 "신규 현장이 강원도 등 원거리 지역밖에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더이상 머뭇거리고 싶지 않았다. 귀농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곧바로 구체적인 계획수립에 나섰다.
먼저 아내를 설득했다. 아내는 "5년만 더 직장생활을 한 뒤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귀농을 돕겠다"고 했다. 현재의 귀농에는 반대한다는 의미였다. 몇가지 이유를 들어 설득작업에 나섰다.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귀농해 정착하는 게 유리하고, 원거리 근무에 대한 부담감, 업무적 스트레스, 아내 직장의 불확실한 정년 등을 얘기하며 설득했죠"
귀농한 동료의 매출기준을 토대로 2년 동안 시설하우스 2동을 운영하며 연봉 3500만원의 매출이 가능하다는 점을 들려주며 집중 설득했다.
대체로 가족들은 귀농하겠다는 결정을 존중해 줬다. 아이들은 조건부 찬성에 한표 던졌다. "힘들겠지만 아빠의 선택을 존중해요. 대신 저희들은 농촌에서 일하기는 싫어요."
귀농을 하게 되면 △안정된 평생직장 △가족과 함께 △건강한 노후 등을 충족시켜 줄 것 같았다. 인터넷 귀농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지인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던 중 현장 근무 당시 동료가 귀농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봤다. 농장을 찾아가 귀농정보를 듣고 주말마다 농장을 찾아갔다. 농작업 및 시설하우스 관리 등을 꼼꼼하게 체크했다. 동료는 귀농을 권유하진 않았다.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했다. 귀농 작목도 정하지 않았기에 기본적인 흐름과 정보를 얻어가며 어깨너머로 지켜봤다.
●가족 회의 끝에 한우 대신 멜론 선택
어머니 역시 반대하지 않았지만 "많이 배워서 잘 살고 있으면서 왜 하필 귀농을 하려고 하느냐"고 했다. 처가 어르신들도 "귀농하면 가족과 함께 모여 사니 좋긴 한데 하우스 일보다 한우를 키워보는 건 어떻겠나"라고 조언했다. 가족들 의견이 한우로 모아지자 아내와 함께 축사매입을 위해 뛰어 다녔다. 하지만 축사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한우가격이 좋아 축사 매입이 어려웠고 매물 역시 거액의 자금이 들어간 축사만 나와 있었다. 한우를 길러 수익을 낼려면 최소 3년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아내 수입만으로 자녀 교육, 축사 구입, 한우 입식 등 3년간의 운영비는 턱없이 모자랐다. 처가 어르신들 역시 장성, 담양 등으로 4개월 동안 축사를 알아봤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다시 종목 변경을 논의했다. 결국 자금회전률이 좋아 수익이 좋다는 멜론으로 결정했다. 귀농인들과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정착준비를 시작했다. 헌데 이게 웬일인가. 2015년 느닷없이 귀농 바람이 불어 귀농인들이 늘면서 시설하우스 구입에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그러던 차 그 해 연말쯤 시설하우스 매물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가 1155㎡ 하우스 2동을 인수한 뒤 본격 메론 재배에 뛰어 들었다. 건설 기술자에서 귀농인으로 변신에 성공한 것. 시설하우스 매도자의 조언과 도움, 주변농가와 협력하며 연착륙에 성공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모친이 사는 마을 사람들이 "아들이 사업을 하다 망해서 고향으로도 못오고 타지역에 살면서 어머니 재산마저 탕진하고 있다더라"는 소문이 돌았던가 보다. 힘든요인은 또 있었다.
●김영란법·대통령 탄핵까지 겹쳐 소비위축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농산물을 찾는 소비자들의 발길이 뚝 끊겼고 멜론가격 역시 전년대비 1/3로 폭락했다. 설상가상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소비마저 위축돼 귀농인들을 더욱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었다. 최소한 연 3500만원의 수익은 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물거품이 됐다. 가끔 통화하는 건설회사 선배들의 "복귀하는게 어떻겠냐"는 권유는 더욱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수입이 적어 아내 도움없이는 엄청난 경영비를 감당할 수조차 없었다.
들어가는 항목을 보면 △각종 병해충 방제 1회 기본 10만원 △시설하우스 외피 비닐 1-3년 주기 교체 △고온성 작물인 탓에 동절기 엄청난 난방비 △ 작물에 투입되는 고가의 영양제 등 수 십가지가 넘는다. 영농에 실패할 경우 들어가게 될 금전적 비용에 대한 중압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재배 방법을 잘 몰라 우수품질을 생산해내는데 실패했다. 병해충에 대한 지식이 없어 방제 시기를 놓치기 일쑤였고 자경지 토양성분을 모르면서 비료를 살포했다. 매년 다르게 유행하는 병충해 탓에 작물관리 역시 어려움이 많았다.
귀농 초기 임대농기계 제도가 있어 유용하게 활용했지만 빌려 쓰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큰 맘 먹고 트랙터를 구입했다.
농사 초보자로 시작했지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서서히 농사꾼으로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기계가 고장나면 독학해가며 수리하는 등 농업실력을 향상시켜 나갔다.
전직이 건설맨이었던 만큼 전공을 살려 비용절감에도 기여하게 됐다.
시설하우스 신축할 때 도면작성 및 비교견적 검토 후 비용을 절감했으며 △전기 및 자동제어 기능 습득 후 시설관리 효율증대 △전기온풍기 설치 시 온풍기만 구입 후 전선포설 및 기계 직접설치 △각종 제어기 고장시 업체 출장서비스 보다 직접 보수로 비용절감 △고장난 기계 교체보다 부분보수 및 교체 △농기계 기본수리 습득 및 일상관리 철저로 최상의 상태유지를 통해 비용을 아껴 나갔다.
●고장 수리도 뚝딱…어엿한 귀농인으로 정착
이젠 시설하우스 유지관리에 최소의 비용을 투입하고 있으며 각종 기술을 익혀 주변 농가에도 도움을 주고 있는 어엿한 귀농인으로 활동하고 있다.자경지 토양 상태를 수시로 점검해 건강한 작물을 키우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매작기 끝날때 마다 농업기술센터 토양검정실을 찾아가 토양검정을 받는다. 토양에 필요한 시비처방 및 관리, 토양 유기물 적정 함량 유지를 위해서다. 볏짚 및 팽연왕겨 투입으로 고상·액상·기상의 비율 유지, 여름철 휴작기 녹비작물(수단그라스) 재배 등으로 시설하우스 토양을 관리하고 있다.
●하우스 6동으로 확대…후배 귀농인에 노하우 전수
시설하우스 규모도 키워 어엿한 귀농인으로 자리매김 됐다.
초창기 1155㎡(하우스 2동)로 시작해 2018년 하우스 2동 신설(1221㎡), 2021년 1155㎡ 하우스 2동 매입 등총 6동의 시설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시설하우스 4동은 친환경 무농약 재배, 2동은 GAP인증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여느 귀농인들처럼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귀농을 준비하는 후배 귀농인들에게는 실패를 최소화 할 수이는 노하우를 전수해 줄 생각이다.
초기 귀농시 무리한 투자 및 귀농 창업대출자금 투입으로 실패해 끝내 역귀농 하는 사례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실패할 경우 경제적 압박은 물론 자금 선순환 실패로 막대한 타격을 입는다.
반드시 자신의 능력에 맞는 투자규모를 정해야 한다. 2년 정도는 운영해 보고 추가 투자를 고려해야 한다. 자신의 상황에 맞는 규모의 투자 자금 없이 귀농창업자금대출만을 이용하려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창업대출금을 받아 창업할 경우 초창기엔 저리의 이자로 부담이 없지만 5년 후 원리금 상황시 까지 소득이 없을 경우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만약 아내가 직업이 있을 경우 성공 정착 후 부부가 함께 귀농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 영농 소득이 없을 때 2년 이상 버팀목(아내의 소득·여유자금 등)은 필수다. 귀농의 정석으로 염두에 두기 바란다.
현재 메론연협회 및 작목반 가입 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역 교회에 나가며 섬김과 봉사 실천에 기여하고 있다. 나주지역 마을합창단에서 노래를 배우며 취미생활을 하고 있으며 지난 2019년 나주문화예술회관 마을합창단 공연에도 출전하기도 했다.
어렵게 정착했지만 현재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처음 기대 했던 대로 경제적인 안정, 직업 스트레스 없음, 노후 일자리, 적당한 노동으로 건강유지, 작은 시작에서 규모있는 농장으로 성장, 시간 및 기회를 이용한 투자로 안정적으로 적응했다고 자평한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도 어려움을 겪는 농업인들이 많다. 최선을 다하고 있겠지만 농삿일이라는게 절대 만만치 않다는 점 절감해야 한다. 절박함이 없으면 농사는 실패한다.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각종 장애물을 현명하게 극복해야 한다. 기후 및 자연재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현재는 인력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남자들의 로망이라는 낭만적인 귀농, 현실감 없는 감상적인 귀농 계획은 자신뿐 아니라 가족, 노후 생활에도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 명심하기 바란다.
By 박간재 기자 kanjae.park@jnilbo.com , 나주=조대봉 기자 dbj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