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수리
- 등록일 2020.04.16 18:25
- 조회수 1135
- 등록자 관리자
등수1리 (등개마을)
큰 마을로 불리는 등개마을
동쪽으로는 넓은 평야를 지나 산포면 교촌리와 인접하고 서쪽으로는 매성리 마성마을과 경계한다. 남쪽으로는 시도 10호선과 넓은 평야가 펼쳐지며 북쪽으로는 구등 마을이 자리한다. 마을의 주변은 온통 평야로 둘러싸여 있다. 도로와 민가만이 드문드문 보일 따름이다. 마을은 크게 두 개의 마을로 나눠지고 있다. 동부와 서부, 웃촌을 한군데로 묶은 등개, 그리고 새터가 등수리에 속한 자연마을이다. 하지만 등수리 사람들은 이 네곳의 마을을 등수리라는 한 마을로 보고 있다. 먼저 주민들은 등개마을에 속한다는 동부와 서부, 웃촌 등 세 곳의 자연마을을 모르는 사람도 태반이었다. 그저 큰 마을로 불리는 등개라는 곳으로 알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등개마을에서 약 50m 정도 떨어진 새터와는 구분해 부르고 있다.
1789년에는 면(面)의 중심 터였던 듯
등수리는 처음 등(等)자를 뺀 수리(樹里)로 불리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수리(樹里)가 문헌상 처음 보이는 것은 1789년 이다. 이 기록에 남평현에 속한 등개면(等介面) 4개 마을 가운데 한 마을인 수리(樹里)가 나온다. 이후 1912년 에는 등포면(等浦面) 12개 마을 가운데 등수리(等樹里)가 기록되어 나온다. 그리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산포면에 속한 등수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마을 이름인 등개(等介)가 1789년 기록에는 면(面)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지금의 등수리 등개마을은 1789년에는 면의 이름이었으며 마을의 이름은 수리(樹里)였고 후에 등개면이 등포면으로 바뀌면서 마을의 이름 또한 등수리로 바뀐 듯 하다. 등개라는 마을 이름은 마을 형성시 양옆으로 숲이 있었는데 가운데 등성이를 중심으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마을의 형국은 배형국이라고 하며 황새바위라 불리는 곳도 있다. 역사가 오래된 마을임에도 집성을 이룬 성씨는 없다
광산김씨가 4백년 전에 이주
등개마을은 누가 언제 마을의 터를 잡았는지 확실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마을에 전하는 이야기로 약 천년 전에 강릉함씨(江陵咸氏)가 강릉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곳에서 함평노씨(咸平魯氏) 딸을 맞아 결혼하게 되었고 그 뒤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다만 마을에서 가장 많은 성씨로 분류되는 광산김씨의 입촌은 21세손인 서(曙)가 지금으로부터 약 4백년전인 광해군 2년(1610)에 전북 정읍시 칠보면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고 한다. 이주의 이유로는 그가 남평현감을 제수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확실한 것은 앞서 언급한 대로 1789년 기록에 면의 이름으로는 등개(等介)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보면 등수리는 이미 1700년대 중반 이전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을 종합해 볼 때 등수리는 조선중기에는 이미 마을로서 기반이 잡혀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800년대와 1900년대를 거치면서 마을로서 발전을 거듭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마을의 지형적인 특성과도 연관지어 볼 수 있다. 형산강의 지류인 남평천이 흐르고 사방이 평야로 둘러싸여 농사를 짓기에 적합한 이 지역은 사람들이 일찍부터 거주했음을 추측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150여호에 이르는 큰 마을을 형성하고 있음은 아마 이같은 이유일 것이다. 마을을 형성했다는 강릉함씨는 현재 한 가구만이 거주하고 있다.
방축마을, 남평읍으로 편입되다
근세 이후 산포면 등수리에 속해 현대를 같이 했던 방축마을이 1999년 9월 28일 남평읍으로 편입됐다. 일제강점기 이후 등수리의 일원으로서 함께 생활을 했던 방축마을이 조선시대 자신들의 생활 터전이었던 남평읍으로 돌아간 것이다.
등수2리(새터마을)
산포면 등수리 1구의 마을 안길 6m의 도로가 큰 마을과 작은 마을을 관통함에 따라 마을간 경계선이 구획됨과 함께 효율적인 행정업무 추진에 어려움이 있어 행정구역을 변경(분구)하여 행정의 능률적인 수행은 물론 주민의 편익을 증진하고자 2008년 조례의 개정으로 분구하였다.
큰 마을로 불리는 등개마을
동쪽으로는 넓은 평야를 지나 산포면 교촌리와 인접하고 서쪽으로는 매성리 마성마을과 경계한다. 남쪽으로는 시도 10호선과 넓은 평야가 펼쳐지며 북쪽으로는 구등 마을이 자리한다. 마을의 주변은 온통 평야로 둘러싸여 있다. 도로와 민가만이 드문드문 보일 따름이다. 마을은 크게 두 개의 마을로 나눠지고 있다. 동부와 서부, 웃촌을 한군데로 묶은 등개, 그리고 새터가 등수리에 속한 자연마을이다. 하지만 등수리 사람들은 이 네곳의 마을을 등수리라는 한 마을로 보고 있다. 먼저 주민들은 등개마을에 속한다는 동부와 서부, 웃촌 등 세 곳의 자연마을을 모르는 사람도 태반이었다. 그저 큰 마을로 불리는 등개라는 곳으로 알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등개마을에서 약 50m 정도 떨어진 새터와는 구분해 부르고 있다.
1789년에는 면(面)의 중심 터였던 듯
등수리는 처음 등(等)자를 뺀 수리(樹里)로 불리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수리(樹里)가 문헌상 처음 보이는 것은 1789년 이다. 이 기록에 남평현에 속한 등개면(等介面) 4개 마을 가운데 한 마을인 수리(樹里)가 나온다. 이후 1912년 에는 등포면(等浦面) 12개 마을 가운데 등수리(等樹里)가 기록되어 나온다. 그리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산포면에 속한 등수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마을 이름인 등개(等介)가 1789년 기록에는 면(面)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지금의 등수리 등개마을은 1789년에는 면의 이름이었으며 마을의 이름은 수리(樹里)였고 후에 등개면이 등포면으로 바뀌면서 마을의 이름 또한 등수리로 바뀐 듯 하다. 등개라는 마을 이름은 마을 형성시 양옆으로 숲이 있었는데 가운데 등성이를 중심으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마을의 형국은 배형국이라고 하며 황새바위라 불리는 곳도 있다. 역사가 오래된 마을임에도 집성을 이룬 성씨는 없다
광산김씨가 4백년 전에 이주
등개마을은 누가 언제 마을의 터를 잡았는지 확실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마을에 전하는 이야기로 약 천년 전에 강릉함씨(江陵咸氏)가 강릉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곳에서 함평노씨(咸平魯氏) 딸을 맞아 결혼하게 되었고 그 뒤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다만 마을에서 가장 많은 성씨로 분류되는 광산김씨의 입촌은 21세손인 서(曙)가 지금으로부터 약 4백년전인 광해군 2년(1610)에 전북 정읍시 칠보면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고 한다. 이주의 이유로는 그가 남평현감을 제수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확실한 것은 앞서 언급한 대로 1789년 기록에 면의 이름으로는 등개(等介)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보면 등수리는 이미 1700년대 중반 이전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을 종합해 볼 때 등수리는 조선중기에는 이미 마을로서 기반이 잡혀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800년대와 1900년대를 거치면서 마을로서 발전을 거듭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마을의 지형적인 특성과도 연관지어 볼 수 있다. 형산강의 지류인 남평천이 흐르고 사방이 평야로 둘러싸여 농사를 짓기에 적합한 이 지역은 사람들이 일찍부터 거주했음을 추측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150여호에 이르는 큰 마을을 형성하고 있음은 아마 이같은 이유일 것이다. 마을을 형성했다는 강릉함씨는 현재 한 가구만이 거주하고 있다.
방축마을, 남평읍으로 편입되다
근세 이후 산포면 등수리에 속해 현대를 같이 했던 방축마을이 1999년 9월 28일 남평읍으로 편입됐다. 일제강점기 이후 등수리의 일원으로서 함께 생활을 했던 방축마을이 조선시대 자신들의 생활 터전이었던 남평읍으로 돌아간 것이다.
등수2리(새터마을)
산포면 등수리 1구의 마을 안길 6m의 도로가 큰 마을과 작은 마을을 관통함에 따라 마을간 경계선이 구획됨과 함께 효율적인 행정업무 추진에 어려움이 있어 행정구역을 변경(분구)하여 행정의 능률적인 수행은 물론 주민의 편익을 증진하고자 2008년 조례의 개정으로 분구하였다.
- 담당부서 산포면 총무
- 전화 061-339-3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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