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동리
- 등록일 2020.04.16 16:53
- 조회수 974
- 등록자 관리자
학동리(鶴洞里) 1구 [덕산(德山), 봉학(奉鶴) 마을]
마을형성
홍주송씨 송정기가 전라도 광산군 대촌에서 살다가 가세가 어려워 이곳에 와 밀양박 씨의 딸을 아내로 맞아 정착하여 온 마을이 덕산이며, 밀양박씨 박만용이 충청도 진 천에 살다가 이곳으로 와서 한양조씨의 딸을 맞아 정착한 마을명이 봉학이다.
유래
덕산마을의 옛이름은 큰말이었다. 이를 한자로 쓸 때 클 덕을 써 덕산이라 부르며 학 이 날아들 것 같은 마을의 형상이라 봉학이라 명 하였다.
문화유산
전설 : 마을에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이 우물을 숫물이라고 하고, 인근 덕산마을에 있 는 우물을 암물이라고 하여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물 한바가지씩을 교환해 결혼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우물은 사용하지 않는다.
학동리(鶴洞里) 2구 [수동(水洞),신경(新京) 마을]
마을형성
입향조는 탐진최씨로서 1500년대에 장성에서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현재는 탐진최씨, 고흥유씨, 진주강씨, 나주임씨 등으로 이루어 진 마을명이 수동이며, 1600년 전후에 반남박씨가 나주에서 들어와 정착하여 현재는 반남박씨, 파주염씨, 나주임씨, 진주강 씨, 행주기씨 밀양박씨등이 쌀과 보리농사를 주로하여 한우사육과 배 과수원을 조성 해 생활하고 있는 마을명이 신경이다
유래
물이 풍부하여 일명 수다촌이라 부르다가 그후 수동으로 개정하였으며, 서울을 닮았 다하여 신경마을이라 명 하였다.
문화유산
영흥당 : 일제시대 마을 안쪽의 귀동골에서 인본인들의 눈을 피해 야학을 열어 우리 말을 가르쳤던 곳으로 1924년 4월 18일자 매일신보에 기사가 실려있다.
입석 : 신경마을이 배 형국이라 떠내려 가지 않도록 배를 매기 위해 사방에 4개의 입 석을 세웠다고 한다. 현재는 당산나무앞, 마을뒤의 논, 마을옆의 밭에 3개만 남아 있다.
마을형성
홍주송씨 송정기가 전라도 광산군 대촌에서 살다가 가세가 어려워 이곳에 와 밀양박 씨의 딸을 아내로 맞아 정착하여 온 마을이 덕산이며, 밀양박씨 박만용이 충청도 진 천에 살다가 이곳으로 와서 한양조씨의 딸을 맞아 정착한 마을명이 봉학이다.
유래
덕산마을의 옛이름은 큰말이었다. 이를 한자로 쓸 때 클 덕을 써 덕산이라 부르며 학 이 날아들 것 같은 마을의 형상이라 봉학이라 명 하였다.
문화유산
전설 : 마을에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이 우물을 숫물이라고 하고, 인근 덕산마을에 있 는 우물을 암물이라고 하여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물 한바가지씩을 교환해 결혼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우물은 사용하지 않는다.
학동리(鶴洞里) 2구 [수동(水洞),신경(新京) 마을]
마을형성
입향조는 탐진최씨로서 1500년대에 장성에서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현재는 탐진최씨, 고흥유씨, 진주강씨, 나주임씨 등으로 이루어 진 마을명이 수동이며, 1600년 전후에 반남박씨가 나주에서 들어와 정착하여 현재는 반남박씨, 파주염씨, 나주임씨, 진주강 씨, 행주기씨 밀양박씨등이 쌀과 보리농사를 주로하여 한우사육과 배 과수원을 조성 해 생활하고 있는 마을명이 신경이다
유래
물이 풍부하여 일명 수다촌이라 부르다가 그후 수동으로 개정하였으며, 서울을 닮았 다하여 신경마을이라 명 하였다.
문화유산
영흥당 : 일제시대 마을 안쪽의 귀동골에서 인본인들의 눈을 피해 야학을 열어 우리 말을 가르쳤던 곳으로 1924년 4월 18일자 매일신보에 기사가 실려있다.
입석 : 신경마을이 배 형국이라 떠내려 가지 않도록 배를 매기 위해 사방에 4개의 입 석을 세웠다고 한다. 현재는 당산나무앞, 마을뒤의 논, 마을옆의 밭에 3개만 남아 있다.
- 담당부서 문평면 총무
- 전화 061-339-3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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