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촌리
- 등록일 2020.04.16 15:42
- 조회수 1276
- 등록자 관리자
총 면적은 542만여㎡이며, 서쪽은 고막원천 건너 함평 함교면 고막리, 북쪽은 문평면 옥당·산호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송촌리는 동쪽 가삿골, 새앙골, 대양뫼골, 여개이골 등에서 나온 물이 북서쪽으로 흘러 송정저수지에 모아졌다가 본촌앞들을 적시며 고막들로 흐른다. 고막원천과 만나는 곳은 유로변동이 심해 물방죽, 새방죽과 같은 습지가 생겼으나 경지정리시 개답되었다. 송촌리는, 1구 본촌(本村), 2구 호장(虎長), 3구 송정(松亭)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송촌리 1구 본촌(本村)마을
마을형성은 1550년경에 김해김씨가 이곳에 들어오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음. 지명유래는 수다면의 중심마을이므로 본촌이라 하였다. 마을에서는 송촌리중 가장 먼저 형성된 마을이라 본촌이라 했다고 전한다. 마을을 세분하면 큰동네, 밀양동으로 구분된다. 마을내 주요 유물 및 시설물로는 고인돌(마을 앞 김순열 논에 7기, 마을에서 건너다 보이는 곳에 김해김씨 숭모재가 있는데 이 입구 주변에 11기가 있고, 여기서 남쪽으로 100m 떨어진 김해김씨 선산에 석실이 노출되어 있는 고인돌 1기가 있다. 또 이 사이에 1기가 더 있다), 김해김공명규공적비(1990년 마을 앞에 건립하였는데, 1977년에 시작하여 1978년까지 경지정리를 실시하던중 경지정리 사업에 불만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피습 당하였다.
주민들이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것이다), 학알(死鶴), 영모재(함평이씨 장이경의 재각), 숭모재(김해김씨 시중공 숭복의 재각), 해주오씨 송은 오몽근 효행실적비, 절터(밀양사터라고도 부른다), 김남순 소장 고문서, 마을회관 겸 노인정 등이 있다.
송촌리 2구 호장(虎長)마을
마을형성은 1760년경에 은진송씨가 충청도 은진군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와서 정착하면서 점차 마을이 형성됨. 지명유래는 옛날 목포에서 한양가는 통로인 지금의 함평과 나주의 경계에 어름재가 있었고, 그곳에 무서운 호랑이들이 서식하여 젊은 장정들도 호랑이가 무서워 넘지 못하고 여러명이 함께 모여서 넘었다하여 호장이라 한다. 마을에서는 호산을 중심으로 호장마을이 호랑이의 입에 해당되므로 호장이라 했다고 한다.
또한, 마을뒤 작은범산에는 둘레가 15m나 되는 큰 고인돌 2기가 한양을 드나드는 나그네들의 발자취를 우뚝서 내려다 보고 있다. 예로부터 내려온 마을 앞 동각은 호남선 철도와 국도1호선인 광목간(광주-목포)도로가 발 뿌리에 접해 있어 上下村(호장, 용호) 주민들의 만남의 장이요 애환의 터전이었는데 2001년 8월 지나온 역사를 모두 감추고 이제는 회관과 나란히 새로 신축하여 폐지된 선로와 국도만을 바라보며 지난날의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다.
송촌리 3구 송정(松亭)마을
마을형성은 300년전에 전씨 최씨가 거주하면서 빙개라 하였으며 250년전부터 인동장씨가 들어오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지명유래는 처음에 빙개라 불렀는데 후에 마을앞에 큰 노송이 있고 그 주위에 집을 짓고 정자를 두었는데 여기에서 이름을 취하여 송정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마을내 주요 유물 및 시설물로는 고인돌(송정 고인돌은 가, 나, 다군의 3개군으로 분포하고 있는데 모두 14기가 있다), 선돌(배매는 돌, 물레독이라고도 한다), 영사재, 추원재, 문강공신도비, 절충장군 용양위부호군인동장공유허비, 마을회관 등이 있다.
송촌리 1구 본촌(本村)마을
마을형성은 1550년경에 김해김씨가 이곳에 들어오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음. 지명유래는 수다면의 중심마을이므로 본촌이라 하였다. 마을에서는 송촌리중 가장 먼저 형성된 마을이라 본촌이라 했다고 전한다. 마을을 세분하면 큰동네, 밀양동으로 구분된다. 마을내 주요 유물 및 시설물로는 고인돌(마을 앞 김순열 논에 7기, 마을에서 건너다 보이는 곳에 김해김씨 숭모재가 있는데 이 입구 주변에 11기가 있고, 여기서 남쪽으로 100m 떨어진 김해김씨 선산에 석실이 노출되어 있는 고인돌 1기가 있다. 또 이 사이에 1기가 더 있다), 김해김공명규공적비(1990년 마을 앞에 건립하였는데, 1977년에 시작하여 1978년까지 경지정리를 실시하던중 경지정리 사업에 불만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피습 당하였다.
주민들이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것이다), 학알(死鶴), 영모재(함평이씨 장이경의 재각), 숭모재(김해김씨 시중공 숭복의 재각), 해주오씨 송은 오몽근 효행실적비, 절터(밀양사터라고도 부른다), 김남순 소장 고문서, 마을회관 겸 노인정 등이 있다.
송촌리 2구 호장(虎長)마을
마을형성은 1760년경에 은진송씨가 충청도 은진군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와서 정착하면서 점차 마을이 형성됨. 지명유래는 옛날 목포에서 한양가는 통로인 지금의 함평과 나주의 경계에 어름재가 있었고, 그곳에 무서운 호랑이들이 서식하여 젊은 장정들도 호랑이가 무서워 넘지 못하고 여러명이 함께 모여서 넘었다하여 호장이라 한다. 마을에서는 호산을 중심으로 호장마을이 호랑이의 입에 해당되므로 호장이라 했다고 한다.
또한, 마을뒤 작은범산에는 둘레가 15m나 되는 큰 고인돌 2기가 한양을 드나드는 나그네들의 발자취를 우뚝서 내려다 보고 있다. 예로부터 내려온 마을 앞 동각은 호남선 철도와 국도1호선인 광목간(광주-목포)도로가 발 뿌리에 접해 있어 上下村(호장, 용호) 주민들의 만남의 장이요 애환의 터전이었는데 2001년 8월 지나온 역사를 모두 감추고 이제는 회관과 나란히 새로 신축하여 폐지된 선로와 국도만을 바라보며 지난날의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다.
송촌리 3구 송정(松亭)마을
마을형성은 300년전에 전씨 최씨가 거주하면서 빙개라 하였으며 250년전부터 인동장씨가 들어오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지명유래는 처음에 빙개라 불렀는데 후에 마을앞에 큰 노송이 있고 그 주위에 집을 짓고 정자를 두었는데 여기에서 이름을 취하여 송정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마을내 주요 유물 및 시설물로는 고인돌(송정 고인돌은 가, 나, 다군의 3개군으로 분포하고 있는데 모두 14기가 있다), 선돌(배매는 돌, 물레독이라고도 한다), 영사재, 추원재, 문강공신도비, 절충장군 용양위부호군인동장공유허비, 마을회관 등이 있다.
- 담당부서 다시면 총무
- 전화 061-339-3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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