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리
- 등록일 2020.04.16 14:10
- 조회수 1249
- 등록자 관리자
대안리(대안리) 1구 [상대(상대)마을]
마을형성 : 광주정씨 정철은 관직을 퇴임하고 둔거생활을 하고자 처가인 경주이씨가 거주하던 이 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음. 진원박씨 박인옥은 장성 진원에서 살다가 지리학설에 의해 이 곳에 안착하여 자손을 양육하고 정씨와 나씨를 친척으로 우의를 돈독하게 하였다. 문화유씨 유근은 영암군 신북면 이목동 동족마을에 거주하였으나 왜란을 당하여 반남면 상리 외처가댁을 찾아가서 거주하게 되었음.
지명유래 : 본 마을은 원래 대월이라 불리워 왔다. 본 마을 주위는 3개의 마을로 되어 있었는데 본 마을의 지령이 달의 형국이라 하여 대월이라 불리워 왔으며 상, 중, 하로 나누어 상중하 대월리로 있었고 일제시대때 옆마을인 영안마을과 합구하여 대안리로 되었으며 이를 칭하여 일제말에 상대라 하였다.
유물·유적 : 대안리 고분 사적76호(4,5,6,7,8,9,12 호)
배출인물
정웅일(鄭熊一, ?~1533, 본관 광주, 중종 병인년 문과 급제, 弘文館 應敎)
박광열(朴光烈, 반남면 제7대 면장)
대안리(대안리) 2구 [구영(구영)마을]
마을형성 : 나주나씨 나경집이 무안에서 생활중 영산강을 거슬러 올라와 지리학설에 의한 터를 잡은 곳이 본 마을인데 현재는 연대미상인 절터가 선왕산 밑에 흔적만 남아있고 그릇을 굽던 도요지터도 흔적만 남아 있음.
지명유래 : 설립년도는 미상이나 2개 마을 중 앞 마을은 거북이가 숨어 있다는 형을 따서 구은이라 불렀고 뒷 마을은 영안이라 부르다가 행정개편으로 인하여 두 개 마을의 앞자를 따서 구영이라 칭하였음.
대안리(대안리) 3구 [풍동(풍동)마을]
마을형성 : 밀양박씨 박운주씨가 방랑생활도중 산세가 좋고 들이 기름져 있어 이 곳에 정착하였으며, 그때 심어 놓은 대나무 밭이 지금도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지명유래 : 설립년도는 미상이나 동으로는 자미산이 우뚝 바라보게 되고 서로는 반남면에서 제일 넓은 저수지(도마제)가 있으며, 서북으로는 기름진 널따란 들(석해들)이 있어 물 좋고 들이 좋아서 항상 메마른 적이 없다고 하여 풍동이라 칭하게 됨
유물·유적 : 대안리고분 사적 제76호 (10,11호) - 마을 좌측에 위치
배출인물
한갑수(전, 국회의원)
한인수(의학박사)
조아라(소심당(素心堂),YMCA 상임고문이자 전남지부 회장) : 1936년 신사참배와 창씨개명 반대로 옥고, 민주화 운동의 대모, 광주의 어머니로 불린다.
대안리(대안리) 4구 [중대(중대)마을]
마을형성 : 나주나씨 순소가 풍류를 즐기기 위해 명승지를 찾던 중 무안에서 영산강을 거슬러 올라와 영암군 시종면 남해포(현재 공산면 복용리 뒷산인 강정산)에 정각을 짓고 지금의 중대마을 뒷등에 정각을 지어 바다를 통하여 오가며 풍류를 즐기면서 이곳에 터를 잡아 대안리 일대에 자손들이 퍼져 살고 있음. 또한 본 마을은 광주정씨 팔대손웅 응교공선대 출생지이다.
지명유래 : 달이 떠오르며 자미산 기슭을 솟아 오를 때 본 마을인 상대월리가 먼저 비쳐 오르면서 다음에 본 마을 중대월리에 달빛이 비친다고 해서 중대월리라고 칭하다가 일제시대 행정구역 개편으로 중대라고 칭함
유물·유적 : 대안리고분 사적 제76호(1,2,3 호)·나주나씨감삼강문(중대마을입구)
대안리(대안리) 5구 [방두(방두)마을]
마을형성 : 광산김씨 김모씨가 영암군 시종면에서 살다가 인근 지역인 본 마을에 이주하여 생활 터전을 잡아 오늘에 이름
지명유래 : 옛날 베 짜는 베틀 형국으로 동쪽으로는 도마들이와 세틀이, 베틀이라는 지명이 있습니다. 또 동쪽 저수지는 날줄이 감겨 있는 방에서 날줄(실)이 풀리는 형국이오, 서쪽 저수지는 베를 짜는 줄(실)이 풀리는 형국이어서 서쪽 마을 이름은 베 짜려고 매어 놓은 앞 베올과 뒷 베올이란 뜻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마을은 베를 짜기 위하여 실을 감아놓은 풀이라 하고 베틀의 머리가 두라 하여 음만 따서 방두라 하였음.
유물·유적 : 대안리 방두고분 2기
마을형성 : 광주정씨 정철은 관직을 퇴임하고 둔거생활을 하고자 처가인 경주이씨가 거주하던 이 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음. 진원박씨 박인옥은 장성 진원에서 살다가 지리학설에 의해 이 곳에 안착하여 자손을 양육하고 정씨와 나씨를 친척으로 우의를 돈독하게 하였다. 문화유씨 유근은 영암군 신북면 이목동 동족마을에 거주하였으나 왜란을 당하여 반남면 상리 외처가댁을 찾아가서 거주하게 되었음.
지명유래 : 본 마을은 원래 대월이라 불리워 왔다. 본 마을 주위는 3개의 마을로 되어 있었는데 본 마을의 지령이 달의 형국이라 하여 대월이라 불리워 왔으며 상, 중, 하로 나누어 상중하 대월리로 있었고 일제시대때 옆마을인 영안마을과 합구하여 대안리로 되었으며 이를 칭하여 일제말에 상대라 하였다.
유물·유적 : 대안리 고분 사적76호(4,5,6,7,8,9,12 호)
배출인물
정웅일(鄭熊一, ?~1533, 본관 광주, 중종 병인년 문과 급제, 弘文館 應敎)
박광열(朴光烈, 반남면 제7대 면장)
대안리(대안리) 2구 [구영(구영)마을]
마을형성 : 나주나씨 나경집이 무안에서 생활중 영산강을 거슬러 올라와 지리학설에 의한 터를 잡은 곳이 본 마을인데 현재는 연대미상인 절터가 선왕산 밑에 흔적만 남아있고 그릇을 굽던 도요지터도 흔적만 남아 있음.
지명유래 : 설립년도는 미상이나 2개 마을 중 앞 마을은 거북이가 숨어 있다는 형을 따서 구은이라 불렀고 뒷 마을은 영안이라 부르다가 행정개편으로 인하여 두 개 마을의 앞자를 따서 구영이라 칭하였음.
대안리(대안리) 3구 [풍동(풍동)마을]
마을형성 : 밀양박씨 박운주씨가 방랑생활도중 산세가 좋고 들이 기름져 있어 이 곳에 정착하였으며, 그때 심어 놓은 대나무 밭이 지금도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지명유래 : 설립년도는 미상이나 동으로는 자미산이 우뚝 바라보게 되고 서로는 반남면에서 제일 넓은 저수지(도마제)가 있으며, 서북으로는 기름진 널따란 들(석해들)이 있어 물 좋고 들이 좋아서 항상 메마른 적이 없다고 하여 풍동이라 칭하게 됨
유물·유적 : 대안리고분 사적 제76호 (10,11호) - 마을 좌측에 위치
배출인물
한갑수(전, 국회의원)
한인수(의학박사)
조아라(소심당(素心堂),YMCA 상임고문이자 전남지부 회장) : 1936년 신사참배와 창씨개명 반대로 옥고, 민주화 운동의 대모, 광주의 어머니로 불린다.
대안리(대안리) 4구 [중대(중대)마을]
마을형성 : 나주나씨 순소가 풍류를 즐기기 위해 명승지를 찾던 중 무안에서 영산강을 거슬러 올라와 영암군 시종면 남해포(현재 공산면 복용리 뒷산인 강정산)에 정각을 짓고 지금의 중대마을 뒷등에 정각을 지어 바다를 통하여 오가며 풍류를 즐기면서 이곳에 터를 잡아 대안리 일대에 자손들이 퍼져 살고 있음. 또한 본 마을은 광주정씨 팔대손웅 응교공선대 출생지이다.
지명유래 : 달이 떠오르며 자미산 기슭을 솟아 오를 때 본 마을인 상대월리가 먼저 비쳐 오르면서 다음에 본 마을 중대월리에 달빛이 비친다고 해서 중대월리라고 칭하다가 일제시대 행정구역 개편으로 중대라고 칭함
유물·유적 : 대안리고분 사적 제76호(1,2,3 호)·나주나씨감삼강문(중대마을입구)
대안리(대안리) 5구 [방두(방두)마을]
마을형성 : 광산김씨 김모씨가 영암군 시종면에서 살다가 인근 지역인 본 마을에 이주하여 생활 터전을 잡아 오늘에 이름
지명유래 : 옛날 베 짜는 베틀 형국으로 동쪽으로는 도마들이와 세틀이, 베틀이라는 지명이 있습니다. 또 동쪽 저수지는 날줄이 감겨 있는 방에서 날줄(실)이 풀리는 형국이오, 서쪽 저수지는 베를 짜는 줄(실)이 풀리는 형국이어서 서쪽 마을 이름은 베 짜려고 매어 놓은 앞 베올과 뒷 베올이란 뜻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마을은 베를 짜기 위하여 실을 감아놓은 풀이라 하고 베틀의 머리가 두라 하여 음만 따서 방두라 하였음.
유물·유적 : 대안리 방두고분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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