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리
- 등록일 2020.04.16 14:09
- 조회수 1145
- 등록자 관리자
신촌리(신촌리) 1구 [성내(성내)마을]
마을형성 : 나주나씨 나덕현이 나주고을에서 살다가 결혼분가하여 산림이 울창하고 식수로 사용할 물이 있어 본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음.
지명유래 : 마을설립년대는 미상이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진을 치고 싸웠던 자미산성과 당시 군마를 단련시켰다는 훈련장이 있으며 그 능선 밑으로 촌락을 이루고 있어 성안 마을이라 칭하며 흰염소의 형상이라 하여 촌명을 백양골이라 칭하며 옛날의 술어로서 사대문과 성터가 있었다하여 성내라 칭함.
유물·유적 : 신촌리고분 사적 제77호(4,6호). 신촌리 성내 비각 및 정려 : 나주나씨 삼강문(거창건씨일인배형). 서원 : 반남서원 반계정
배출인물
나승집(羅昇集, 본관 나주, 반남금융조합 조합장, 반남면장)
나용균(羅龍均, 본관 나주, 반남면 제1대 면장)
정순규(鄭淳圭, 1892~1969, 본관 하동, 호 錦雲, 봄과 가을에 詩를 읊고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潘南 吟社를 결성하고 주관, 輪鑑錄 5권 저술)
정우채(鄭瑀采, 1911~1989, 본관 하동, 호 錦下. 항일학생독립운동의 모체인 醒進會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수감되어 2년 복역. 호남신문사 논설위원. 세계통신사 전남지사장 역임. 1983년 독립유공자로 대통령 표창. 1990년 독립유공자로 건국훈장애족장 수령)
※ 특기사항 : 에 모범방위촌으로 선정된 후 영화가 제작되어 전국에 상영됐고 1972년 4월 1일 대통령표창장과 포상을 수상한 바 있다고 적혀 있다.
신촌리(신촌리) 2구 [신기(신기)마을]
마을형성 : 김해김씨 김손간이 충북논산에서 살던 중 도승이 그의 집을 지나다 들려 남쪽으로 내려가면 부유하게 살 수 있다 하여 계속 내려오다가 지금의 본 마을에 장착 거주하게 되었음.
지명유래 : 좌우로는 자징산성이 뻗쳐 있고 본면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중앙에서부터 새롭게 터를 닦아 발전하여 나간다 해서 신기라 칭하다가 현재는 신기로 개칭함.
유물·유적 : 신촌리 고분 사적 제77호
배출인물 : 김낙현(1925~1995, 본관 김해, 대법원 판사, 검사, 변호사, 목포지청장 역임)
신촌리(신촌리) 3구 [평촌(평촌)마을]
마을형성 : 나주나씨 나수천의 차남인 나사용이 분가하여 본 마을에 입주하였다 함. 탐진최씨 최운차의 차남인 최낙현의 분가로 입주하였다함.
지명유래 : 약 4백여년 전에 나주나씨가 처음 설립한 마을로써 삼청강을 뒤로 평야지로 조성되 살기좋고 인심이 후하여 평안하고 안락한 마을이라 평촌이라 칭함.
유물·유적 : 신촌리고분 사적 제77호 (1,2,3호)
배출인물 : 나덕헌(1700년대 전후 인물, 본관 나주, 병조판서 역임)
마을형성 : 나주나씨 나덕현이 나주고을에서 살다가 결혼분가하여 산림이 울창하고 식수로 사용할 물이 있어 본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음.
지명유래 : 마을설립년대는 미상이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진을 치고 싸웠던 자미산성과 당시 군마를 단련시켰다는 훈련장이 있으며 그 능선 밑으로 촌락을 이루고 있어 성안 마을이라 칭하며 흰염소의 형상이라 하여 촌명을 백양골이라 칭하며 옛날의 술어로서 사대문과 성터가 있었다하여 성내라 칭함.
유물·유적 : 신촌리고분 사적 제77호(4,6호). 신촌리 성내 비각 및 정려 : 나주나씨 삼강문(거창건씨일인배형). 서원 : 반남서원 반계정
배출인물
나승집(羅昇集, 본관 나주, 반남금융조합 조합장, 반남면장)
나용균(羅龍均, 본관 나주, 반남면 제1대 면장)
정순규(鄭淳圭, 1892~1969, 본관 하동, 호 錦雲, 봄과 가을에 詩를 읊고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潘南 吟社를 결성하고 주관, 輪鑑錄 5권 저술)
정우채(鄭瑀采, 1911~1989, 본관 하동, 호 錦下. 항일학생독립운동의 모체인 醒進會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수감되어 2년 복역. 호남신문사 논설위원. 세계통신사 전남지사장 역임. 1983년 독립유공자로 대통령 표창. 1990년 독립유공자로 건국훈장애족장 수령)
※ 특기사항 : 에 모범방위촌으로 선정된 후 영화가 제작되어 전국에 상영됐고 1972년 4월 1일 대통령표창장과 포상을 수상한 바 있다고 적혀 있다.
신촌리(신촌리) 2구 [신기(신기)마을]
마을형성 : 김해김씨 김손간이 충북논산에서 살던 중 도승이 그의 집을 지나다 들려 남쪽으로 내려가면 부유하게 살 수 있다 하여 계속 내려오다가 지금의 본 마을에 장착 거주하게 되었음.
지명유래 : 좌우로는 자징산성이 뻗쳐 있고 본면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중앙에서부터 새롭게 터를 닦아 발전하여 나간다 해서 신기라 칭하다가 현재는 신기로 개칭함.
유물·유적 : 신촌리 고분 사적 제77호
배출인물 : 김낙현(1925~1995, 본관 김해, 대법원 판사, 검사, 변호사, 목포지청장 역임)
신촌리(신촌리) 3구 [평촌(평촌)마을]
마을형성 : 나주나씨 나수천의 차남인 나사용이 분가하여 본 마을에 입주하였다 함. 탐진최씨 최운차의 차남인 최낙현의 분가로 입주하였다함.
지명유래 : 약 4백여년 전에 나주나씨가 처음 설립한 마을로써 삼청강을 뒤로 평야지로 조성되 살기좋고 인심이 후하여 평안하고 안락한 마을이라 평촌이라 칭함.
유물·유적 : 신촌리고분 사적 제77호 (1,2,3호)
배출인물 : 나덕헌(1700년대 전후 인물, 본관 나주, 병조판서 역임)
제출완료
제출이 완료되었습니다.
의견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보내주신 소중한 의견은 페이지 개선에 도움이 됩니다.
보내주신 소중한 의견은 페이지 개선에 도움이 됩니다.
만족도조사 결과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