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천리
- 등록일 2020.04.16 14:07
- 조회수 1080
- 등록자 관리자
석천리(석천리) 1구 [석천(석천)마을]
마을형성 : 진주강씨 강주하씨가 영암군 시종면 봉영리에 살다가 아들인 강옥환을 데리고 정착하여 400년간 거주하여 지금에 이름. 마을 앞에 심어진 고목이 된 감나무는 그 때 당시 심어진 나무임.
지명유래 : 약 4백년전에 처음 설립된 마을로 전설에 의하면 지세가 옥녀강금형이라 많은 명창들이 배출되었다 하여 당초 이 마을에 큰 돌샘이 유명하여 석정마을이라 칭하여 오다 석천사란 절이 있어 마을명을 석천이라 개칭 하였다고 함.
유물·유적 : 석천리 고분군(1,2,3,4호)
배출인물 : 강달주(1892~1946, 본관 진주, 의병 호군대장으로 활동, 대구형무소에서 5년형 언도)
석천리(석천리) 2구 [월현(월현)마을]
마을형성 : 장소유씨 유길만이 남원에서 분가 후 새로운 터전을 찾아 지금의 마을에 이르러 정착하게 되었음
지명유래 : 약 3백년간에 처음 생긴 마을로 마을의 동남방향에 위치한 호산 위로 떠오르는 달을 보고 달이 떠오르는 곳이다 하여 이름을 월현이라 칭함.
석천리(석천리) 3구 [연화(연화)마을]
마을형성 : 전주이씨 이대복이 해남에 살다가 부친 이창훈의 사망으로 인하여 편모 천안전씨를 모시고 살다가 남양홍씨의 딸을 배필로 맞아 이곳으로 정착하였음.
지명유래 : 마을 앞산의 지형이 호형이며 마을의 터는 호산의 하록이여서 연화도수의 명당지대라 하고 마을 앞 중앙에 있는 당산나무 (도보호수로 수령 약 4, 5백년 추정)가 너무나도 웅장하고 아름다워 잎이 무성한 여름철이나 겨울철 나뭇가지에 눈꽃송이가 마치 활짝핀 연꽃 같다하여 연화동이라 부르기도 하고, 지금은 연화마을로 부르고 있음. 현재는 안타깝게도 당산나무가 존재하지 않음
배출인물 : 김을수(金乙洙) - 반남면 제8대 면장.
마을형성 : 진주강씨 강주하씨가 영암군 시종면 봉영리에 살다가 아들인 강옥환을 데리고 정착하여 400년간 거주하여 지금에 이름. 마을 앞에 심어진 고목이 된 감나무는 그 때 당시 심어진 나무임.
지명유래 : 약 4백년전에 처음 설립된 마을로 전설에 의하면 지세가 옥녀강금형이라 많은 명창들이 배출되었다 하여 당초 이 마을에 큰 돌샘이 유명하여 석정마을이라 칭하여 오다 석천사란 절이 있어 마을명을 석천이라 개칭 하였다고 함.
유물·유적 : 석천리 고분군(1,2,3,4호)
배출인물 : 강달주(1892~1946, 본관 진주, 의병 호군대장으로 활동, 대구형무소에서 5년형 언도)
석천리(석천리) 2구 [월현(월현)마을]
마을형성 : 장소유씨 유길만이 남원에서 분가 후 새로운 터전을 찾아 지금의 마을에 이르러 정착하게 되었음
지명유래 : 약 3백년간에 처음 생긴 마을로 마을의 동남방향에 위치한 호산 위로 떠오르는 달을 보고 달이 떠오르는 곳이다 하여 이름을 월현이라 칭함.
석천리(석천리) 3구 [연화(연화)마을]
마을형성 : 전주이씨 이대복이 해남에 살다가 부친 이창훈의 사망으로 인하여 편모 천안전씨를 모시고 살다가 남양홍씨의 딸을 배필로 맞아 이곳으로 정착하였음.
지명유래 : 마을 앞산의 지형이 호형이며 마을의 터는 호산의 하록이여서 연화도수의 명당지대라 하고 마을 앞 중앙에 있는 당산나무 (도보호수로 수령 약 4, 5백년 추정)가 너무나도 웅장하고 아름다워 잎이 무성한 여름철이나 겨울철 나뭇가지에 눈꽃송이가 마치 활짝핀 연꽃 같다하여 연화동이라 부르기도 하고, 지금은 연화마을로 부르고 있음. 현재는 안타깝게도 당산나무가 존재하지 않음
배출인물 : 김을수(金乙洙) - 반남면 제8대 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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