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 - 나무이야기여행_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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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두시







                   당산나무 한량께서는
                                                                    김  종 시인



                        소리북처럼 득음한 당산나무는
                        허공 멀리까지 팔 벌려 섰다

                        칠백 살의 육중한 몸이
                        손 모아 밤샘 기도하는 모습은

                        삼천갑자 동박삭을 뵙는 듯했다



                        풍우를 막아서던 가지 몇 개가 부러졌다
                        다람쥐보다 발 빠른 청년들이

                        어떤 것은 받쳐주고 어떤 것은 절단했다
                        절단된 뒤에도 당산나무는

                        솥단지 같은 제 속을 보란 듯이 열어놓고
                        등대처럼 높은 키로 온 마을을 불 밝혔다



                        마을 대소사를 원•근간에 내바람하던

                        풍채 좋고 팔자 좋은 당산나무는
                        링거 꽂고 시름거리는 노환임에도

                        별들과 밤 새워 소곤거리고
                        여름이면 그늘자리에 평상을 놓아

                        펄펄 끓는 삼복더위를 거뜬히 건네셨다



                        마을 사람들을 형제처럼 정 붙여놓고
                        이리 태평한 세월은 없다시는지

                        하늘만큼 땅만큼 웃어 보이며
                        이날 평생을 부채 든 한량처럼 살랑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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