雨山리 印岩마을 (현 우산리 1리)
마을 형성연대는 미상이나 최초 입향은 평산신씨로 추정되며, 그 후에김해김씨, 하동정씨 순으로 정착하였다. 이 마을 백호등에 있는 10m 이상의 석층위에 60kg쯤의 마치 호랑이 형태의 도장 모양이 찍혀있는 바위가 있는데 아무리 힘쎈 장사라도 이 바위를 움직일 수 없었다는 전설과 호랑이 형태의 도장이 찍혀 있는 마을에 터를 잡았다하여 인암으로 칭하였다 한다.
우산리 文武마을(현 우산리 1리)
이 마을에 최초로 정착한 선인들은 다른 마을에 비해 글공부하는 學童이 많아 추후 많은 문인들이 배출될 것이라 하여 선인들이 문무라 칭하였다.
우산리 山마을 (현 우산리 2리)
마을 뒷산 지형이 櫓頭에 피었다하여 花頭라 불리우다가 일제때에는 돗대라하였고 현재는 차산이라 칭하여지고 있다.
우산리 雨津마을 (현 우산리 3리)
新平宋氏 宋自殷이 전북 신평에서 살다가 이 마을에 와 南陽洪氏의 딸을 맞아 후손 5형제를 두어 500년 안주할 곳이라 입향하였으며 현재 500년 이상된 당산나무가 그 때 심어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마을 앞에 있는 高堂山이 施雨하여 마을 앞에 山亭燈을 나리 삼아 무형을 따라 오른쪽에는 白雲臺가, 왼쪽에는 雲洞이, 앞으로는 雲浦가 있어 비나리(雨津)라 하였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