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면적은 579만㎡쯤으로 신광리에 이어 다시면에서 두 번째로 넓은 면적의 리이다. 임야가 430만㎡이고, 경지는 논 43만㎡, 밭 30만㎡정도 된다. 신걸산(368m) 정상에서 내려선 남서쪽 기슭에는 복암사란 사찰이 있고 남쪽 영산강 변에는 구진포가 있다. 구진포는 영산강이 감도는 곳으로 공격사면에 해당해 소(沼 Pool)가 형성돼 옛날 갯물이 올라올 때 장어가 많이 잡혀 구진포장어로 전국에 소문이 난 곳이다. 지금도 신흥식당을 비롯 10여집이 옛 명성을 따라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가운리는, 1구 운암(雲岩), 2구 가동(佳洞), 3구 신걸(信傑)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가운리 1구 운암(雲岩)마을

마을형성은 어느시기에 마을이 형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마을 입구에 있는 입석과 지석묘군이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긴 세월을 두고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측됨. 지명유래는 마을 뒤편에 구름바위가 있다해서 한자로 표기하면서 운암(雲岩)이 되었으나 본디 삽초골, 삽작골, 출동(朮洞)으로 불러 왔다. 마을내 주요 유물 및 시설물로는 마을 어귀 길옆에 서있는 높이 170cm쯤 되는 선돌과 조남재(수성 최씨 최순의 재실), 청모재(광산 김씨 김필연의 재각), 마을회관, 동각 등이 있다.

가운리 2구 가동(佳洞)마을

마을형성은 백제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마을앞에 지석묘군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을형성이 고대국가 시대부터 형성된 것으로 추측됨. 지명유래는 백제시대 중들의 옷을 만들어내는 가내공업이 있어 일명 가삿골이라 하였으며 당시 서민들이 입을 수 없는 아름다운 천으로 만들었다 하여 가동이라 함, 마을에서는 복암사 어귀에 있어 절에서 입는 가사(袈裟)를 만든 곳이라 가삿골이라 했는데 축약하면서 아름다울 가(佳)를 쓴 듯하다. 가장자리에 있다는 뜻으로 가상골이라 부른 것이 가동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마을내 주요 유물 및 시설물로는 고인돌(마을 남쪽 광목간 도로 북쪽에 3개 군에 걸쳐 32기 분포), 복암사(서기 546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하고 있는 사찰로 신걸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사찰 내에 총 높이 2.6m 탑으로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측되는 3층 석탑이 있었으나 현재 2층 옥개석까지만 남고 나머지는 없다), 이 외에 여재각(추계 추씨 재각), 영모재(서흥김씨 재각), 열부제주양씨 기행비, 시랑면사무소터(가운리 408번지 일대) 등이 있다.

가운리 3구 신걸(信傑)마을

마을형성은 조선말기 김해김씨, 밀양박씨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됨, 지명유래는 마을 위치가 신걸산 밑에 있다하여 산의 이름을 따 신걸이라 하였다. 마을은 성치, 새터, 문암, 구진포 4개마을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마을내 주요 유물 및 시설물로는 백호선생묘(신걸 마을 북쪽 200m 쯤으로 일명 백호봉 바로 남쪽 해발 90m쯤에 있다), 영당(影堂 - 강화유수와 남원부사를 지낸 임정(1654∼1710)의 영정을 모신 곳), 영성각(나주 임씨 재실), 임영신도비, 임진추모비, 임서신도비, 임제시비, 이민옥소장고문서, 창계서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