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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숙 이광익에게서 군량미를 확보한 김천일은 외숙에게 큰절을 했다."외숙, 외숙의 뜻을 받들어 신음허는 백성을 구해불것습니다요.""내 재산이 나라를 구허는디 보템이 된다믄 이보담 더 큰 이익이 으디있것는가. 이익을 가져다주는 자네에게 까꾸로 내가 고마와 해야지."이 두사람의 대화를 보면 얼마나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수 있을것 같다. 이분들의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요즘정치하시는 분들이 배웠으면 한다. 선생님 잘 읽었습니다. 건강도 잘 챙기세요.강행군을 하시는것 같아 걱정입니다.
왜군의 침략 앞에 이름이 알려진 장수들조차도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맥없이 무너졌다는 것은 충격이다. 왜군을 보았다고 알린 양민을 탐망군사도 보내지 않고 군사를 동요시켰다는 죄목만으로 가두고 또 효수한 순변사 이일. 그는 왜군의 공격에 갑옷을 벗고 변장해 줄행낭 치는 등 함경도 북병사 시절부터 못된 짓만 골라하는 계속된 헛발질에 실망했다. 김천일의 창의에 군량미 4백 석을 선뜻 내놓는 외숙 이광익의 믿음이 충주전투의 참담한 패배를 잊게 하였다.
無信不立 서인 영수 송강 정철이 주도한 기축옥사(1589년)를 계기로 서인이 잠시 정권을 장악하였으나 건저문제로 정철이 탄핵되어 명천에 유배되었다가 진주와 강계로 이배되었다. 이와 관련되어 제봉 고경명도 1591년 동래부사에서 파직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경명은 당대의 수많은 문인들과 교류하며 임억령, 김성원, 정철과 더불어 식영정 四仙이라 불렸다. 1590년 통신사 일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중봉 조헌은 선조와의 갈등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충북 옥천에 내려와 후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조헌도 한때 정철과 함께 관직 생활을 하였다. 김천일은 기축옥사 이후 서인 집권기에 나주 경현서원 원장을 맡아 호남을 대표하는 유학자로 부각되었다. 김천일은 정철과는 사돈 관계이니 고경명, 조헌, 김천일 등 의병들이 정철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겠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은인자중하던 서인 출신 김천일, 고경명, 황진, 양산숙, 최경회, 조헌 등은 의병을 일으켜 서로 협력하였다. 1590년 통신사로 갔다가 돌아온 서인 황윤길, 황진, 조헌 등은 왜가 침략할 것이라고 하였다. 기축옥사로 궁지에 몰렸다 건저문제로 서인이 실각하자 다시 정권을 잡은 동인 김성일 등은 민심 혼란을 이유로 왜가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순신은 1591년 유성룡 등의 추천으로 진도군수로 승진한 후 가리포진 수군첨절제사를 거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임명되었다. 권율은 유성룡, 윤두수 등 동인들의 추천으로 의주목사로 발탁되었다. 한마디로 신의 한수였다 할 수 있겠다. 동인들도 유능한 인재들을 요지에 배치하고 성곽을 정비하는 등 나름대로 왜의 침략에 대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동인 출신 김성일은 임란이 나자 문책성 인사로 경상 우병사에 임명되어 왜군의 소굴인 경상도에서 병사를 모집하고 보급을 자체 조달하는 등 관료로써 역할을 하였다. 동인 서인 다 백척간두의 국난을 맞이하여 나름 최선을 다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 와중에도 당파의 이익을 앞세워 서인들은 이순신을 끝없이 끌어내리려 하였으며 동인들은 진주성 싸움 등에서 서인 출신 의병들과 서로 협력하지 못하였다. 공자가 ‘논어 안연’편에서 자공이 정치에 관해 묻자 공자는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군대를 충분히 하고(足兵)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이다(民信).‘라고 하였다. 자공이 어쩔 수 없이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 지 묻자 ”군대, 식량 순으로 포기해야 한다며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서지 못한다.(民無信不立)“ 라고 하였다. 김천일이 의병을 일으키기 전 식량부터 구하는 것도 이런 연유라 하겠다. 선조는 수많은 인재들을 가지고도 신하들을 끊임없이 부추키어 이전투구하게 하여 백성의 신뢰를 잃었으니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리 만무하였다. 선조가 하루는 “내가 중국사로 치자면 어느 왕과 맞먹을까?” 라고 자화자찬을 하면서 넌지시 “중국 역대 명군과 비슷하지 않느냐”고 암시하자 주저 없이 “학문에서는 명군인 요임금과 같사오나 정치로 보자면 폭군인 주왕 같사옵니다‘라고 하였다. _학봉 김성일
중요한 정보를 전해준 무고한 백성을 효수하고 전쟁도중 아군이 전멸할 위기에 몰리자 자기목숨은 지키려 변장하고 도망친 이일순변사, 잔혹함과 이기심에 분노를 느낍니다. 또한 신중하지 못한 전략으로 아군을 모두 잃어버리고 자신의 목숨마저 버린 신립, 중책을 맡았던 장군들의 연이은 실패가 절망적이네요. 그럼에도 나라를 위해 곳간의 곡식을 모두 내놓겠다며, 선뜻 곳간열쇠를 가져가라는 와병중인 칠순노인 이광익의 마음에서 다시 희망의 싹을 봅니다.
경상도 충청도를 지나 도성 함락을 목전에 두고 김천일은 창의에 나서는데 첫째로 중요한 군량미를 담양에 사는 외숙이광익에게서 이삼백명이 몇달을 먹을 수 있는 분량인 4백석을 확보하게됀다 조선군의 연전연패의 참담한 소식에 우울하고 답답했는데 외숙이광익의 충절에 의병창의를 위한 첫발자국을 때는 김천일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 보이는 11번째이야기 군량미확보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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