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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글을 쓰지 않으면 바로 전(前)작가가 되고 만다는 작가님의 말씀대로 역작을 이어가시는 열정이 놀랍습니다. 나주를 중심으로 펼쳐질 김천일 장군의 깊은 이야기가 역사문학의 또 다른 지평이 되길 기대합니다.
호남 최초 의병장 건재 김천일 장군에 대한 역사 소설 영산강의 꿈을 나주시청 홈페이지를 통해 읽을 수 있게 됨을 먼저 감사 드립니다. 영산강의 꿈은 바로 호남인의 꿈이기 때문입니다. 호남의 전통은 여러가지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국난시 나라를 지킨 의병 활동은 호남의 전통이었으나 아직까지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사명감으로 호남의 인물과 당시의 시대 상황을 밀도 있게 연구하여 조명하고 계신 정찬주 작가님께 감사 드립니다. 특히 김천일 장군의 영원한 스승 일제 이항 선생은 평소 제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저희 선조님이 되기 때문에 남다른 감회가 깊습니다. 정 작가님 이번 연재 기대하는 바가 높습니다 건강에 유의 하시면서 건필하시길 빌며 특히 훌륭한 호남인을 조명하고자 하는 나주시장님과 관계공무원에게도 감사 인사 드립니다.
존경하는 작가님의 글을 다시 접하게 되어 너무 좋습니다.특히 이고장(나주) 의병장 김천일장군이 살아온 훌륭한 업적을 되돌아 볼 기회가 되어서 더욱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작가님의 대작인 이순신의 7년, 광주아리랑에 이어 김천일장군에 대한 글도 애독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임진왜란과 관련된 소설이순신의7년, 못다부른 명량의노래, 칼과술에 이어 영산강의 꿈까지 여수 강진 보성을 거쳐 나주에서또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이순신의 7년을 쓰시면서 얼마나 많은 공부를하셨을까,하는 생각이 와닿는다정찬주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전혀 몰랐던김억추장군과 선거이장군을 조그이나마알게되었고 이제는 김천일장군을 만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일재 이항의 문하에서 칼과붓을 다룰줄아는선비로 성장하신 김천일장군이무술에는 밝은 큰아들 상건 학문에는 밝으나 무술은 빈약한 둘째아들 상곤과 함께펼쳐나갈 영산강의 꿈그첫번째 이야기를 잘읽었고 두번째이야기를기대합니다
이순신은 전라도 여수에 와서 성인이 되었다. 그가 성인이 된 것을 도운 것은 다름아닌 난중일기와 조정에 보낸 장계를 집합한 임신장초라는 글이 있어서 이다.이순신은 십대에 한양 중구에 있는 동학에서 3살 위인 유성룡과 동문수학을 한다.그가 남긴 한산도가 등 한시와 화려한 문체는 십대에 문과를 준비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글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장수 이순신을 백성과 후대가 알게 만든 것은 그가 여수에 와서전라좌수사및 삼도수군통제사가된 다음부터 기록한 난중일기이다. 그 책을 통해 우리는 성웅 이순신과 같이 살아 숨쉰다. 선거이 장군을 현재화 시킨 '칼과 술'에서 우리는 보성의 위대한 장수가 바로이순신의 절친이었다는 것을정찬주 작가의 붓을 통해 알게 되었다. 김천일이라는 한 인물이 의인화되어 드디어 우리 곁에 온다.그가 이순신보다 8년 연상이고 일재 이항선생의 문하생으로나주가 고향이라는 사실을 오늘 알게 되었다. 황룡강과 영산강이 지석강과 만나 한 줄기를 이룬다는 것도 오늘 알았다. 극념당이라는 학당을 짓고 후학을 기르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전남의 인물을 의인화하는 작업에 극찬을 보내고 싶다.광주아리랑이 발간 된 후 그렇게 광주를 괴롭히던 지만원씨가 자기의 주장을 포기하고자기의 우익site를 폐쇄하였다고 한다. 글이란 이런 것이다. 글을 남기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다.호남을 제외하고 무자비하게 뱃어내는 광주와 전라도에 대한 억측, 비난, 비방,언어폭력 , 낙인의 주홍글씨 속에서 호남인은 살고 있다.그런 속에서 하나하나 할 일을 해 내시는 정찬주 작가님의 투혼에 깊은 경의를 표하고 싶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의 길을 갈 뿐이고 역사는 이런 행보에 반드시 광채를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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