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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신은 일찍이 선친께서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화를 입고 목숨을 잃었다지만 유일하게 살아남아 관노가 되어 목숨을 부지하다가 류성룡에 의해 복관돼, 다대진 굴강 전투에서 멋진 선제화공작전 승리는 부산진성 전투에서 죽은 장졸들의 영혼을 달래주는 복수였다. 잘 읽었습니다.
이번 8회에는 여러가지 중요한 내용이 들어있다. 첫번째는 전투에서 지휘관의 판단이 승패를 좌우 한다는 것이다.다대진 첨사 윤흥신은 성을 지키는 작전이 아니라 선제 공격하는 전략을 택하여 승리하였다.일부 군사는 왜군들이 오는 길목에 매복하였다가 중간 허리를 공격 하여 적을 양단시켜 각개 격파시켰다.일부는 왜선의 정박 예상지점에 매복해 있다가 불화살을 쏘아 침몰시키는 작전으로 한 척을 침몰시켰다.두번째는 충성심이다.윤흥신은 임금을 향하여 망궐례를 올리며 죽더라도 성을 베개삼아 적을 물리치겠다고 맹세한다.그리고 자신을 알아준 유성룡에게도 반듯이 승리하여 은혜에 보답하겠노라고 다짐한다.마지막으로 부인과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다.지휘관의 이같은 행동은 그대로 군관을 거쳐 장졸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효과로 이어진다.이는 당연히 전투의 결과로 나타났다.왜군은 부산진 전투에서 백사십여 명을 잃고 다대진에서 이삼백여 명이 전사하는 패전을 맛보았다.그러면서 하는 말이 "우리 군사들은 이익을 취하고자 출병했지만, 조선 군사들은 왕을 위해 싸운다.조선 군사들의 충성심 때문에 곤란을 겪을지 모른다."라고 평가한데서도 잘 드러났다.왜군은 놀란 나머지 다대진 공격부대를 교체하는 등 신중에 신중을 기하게 된다.이처럼 정발과 윤흥신의 탁월한 판단력과 충성심으로 조선은 초전에 만만치 않은 전투력을 보여 주었다.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사 시간에 이렇게 배우지 않았다.송상현 동래부사의 순절만 언급하였을뿐 처음부터 왜군에게 겁을 먹고 도망하기에 바빴다 라고 배웠다.왜일까? 바로 식민사관의 잔재이기 때문이다.작가는 지금 이런 잘못된 역사를 발굴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내가 작가에게 고맙게 생각하며 '이순신의 7년' 때부터 열심히 댓글을 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댓글을 다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소설을 대충 읽을 수가 없다.그리고 댓글을 쓰고 나서도 몇번을 다시 읽어보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다.벽록 작가로 인하여 제대로된 일제청산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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