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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여행

특별한 멋이 있는나주 명소를 만나다

고샅길 답사기

나주읍성 고샅길2천년 시간여행 서부길 #03 함께라서 더 좋다

  • 보리마당거리
  • 서성벽길 & 서성문
  • 연리지
보리마당 거리
01보리마당거리

따스한 햇볕만큼 누렇게 보리가 익는 보리누름이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 모였다. 볕이 좋은 날, 마당 가득 보리를 쌓고 모두가 한가족인양 타작을 했다. 함께 모여서 일을 하니 힘든 노동도 할 만 하다. 서로 마주보고 서서 힘껏 도리깨질을 한다. 이때 노래가 빠질 수 없다. 주거니 받거니 노래를 내뱉으며 보리를 두들긴다. 도리깨꾼들의 박자감도 중요하다. 도리깨질과 노래의 박자가 서로 맞지 않으면 일이 개운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새참 때가 되면 홍어에 막걸리 한사발 들이키며 숨을 고른다. 먹을 것이 있으니 아이들도 모여들고 웃음소리도 넘쳐난다. 꼭 잔치 같다.

  • 보리마당 거리 앞 담벼락
  • 보리마당 거리 건물
보리마당 거리 담벼락 자전거

보리누름은 5~6월 무렵이고, 장마가 7월에 오니 보리타작의 시기를 잘 맞추어야 한다. 사정상 일손이 모자란 집은 기껏 농사지은 곡물을 버리게 될 수가 있다. 하지만 우리네 정서 상 그걸 알고도 모른 척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함께 모여 네 일, 내 일 나눌 것 없이 일을 해야 마음이 편했다. 그렇기에 이 보리마당거리는 따뜻한 정이 있고, 즐거운 추억이 머물어 있는 장소로 기억되고 있다.

서성벽길 서성문
02서성벽길 & 서성문
위치: 전라남도 나주시 서내동 118
  • 서성벽길 서부길 안내 표지판.
  • 서성벽길.

무너진 흔적을 따라 걷는다. 어쩐지 을씨년스럽기도 하다. 저 멀리 서성문이 보인다. 이 안쓰러운 흔적의 길은 서성벽길이다. 서성문도 일제강점기 민족혼말살정책의 일환으로 동점문, 남고문, 북망문과 함께 부숴졌지만 성벽보다 먼저 복원되어 나주읍성의 과거를 알린다.

  • 사적 제337호로 지정된 나주읍성
  • 사적 제337호로 지정된 나주읍성 서성벽길

사적 제337호로 지정된 나주읍성은 고려시대에 지어졌다. 면적은 97만4390㎡, 성벽의 길이는 약 3.5km에 달했을 것이라고 한다. 나주는 당시 지방 중심도시인 8목 가운데 하나였고, 조선시대에도 경제 문화 군사의 중심지였다. 중요한 도시였던 만큼 나주읍성은 그 규모도 컸지만 오랜 전통과 역사적 가치도 크게 지니고 있다.

나주읍성 4대문 중 서성문

서성문은 나주읍성 4대문 중 가장 슬픈 사연을 안고 있다. 동학농민운동에 관한 것이다. 1894년 7월 5일, 금성산에 진을 치고 있던 동학농민군들이 서성문을 공격했다. 호남의 다른 대부분의 지방관아는 이미 농민군의 손에 넘어갔지만 전국에서 가장 많은 세곡을 바친다는 나주는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다. 농민군은 나주를 두 차례 공격했지만 끝내 서성문을 넘지 못하고 3000여명의 사상자를 남기며 대패하였다. 신망이 높기로 유명했던 민종렬 목사를 중심으로 270여명의 향리와 일가권속들 또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맞섰던 것이다.

  • 서성문
  • 서성문 중 벽

동학농민군에게는 서성문을 지켰지만, 이 후 침략한 일본인들에 의해 나주읍성은 결국 무참히 사라지게 되었다. 조금이나마 옛나주읍성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서성문길이다. 복원이 될 예정이지만 쓰린 상처는 낫기 어려울 것이다.

  • 서성벽길 벽면
  • 서성벽길의 솟대
  • 종만이 아저씨 집
  • 종만이 아저씨 집 벽면’
Tip. 서성벽길에서 만나요.

종만이 아저씨 집 구한말 나라가 어려울 때 땅 없는 사람들이 성터 위에 집을 짓고 살았다. 이종만 님의 집은 1940년대 지어졌으며, 나주읍성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서성문 인근의 ‘두부집터’

서성문 인근의 ‘두부집터’. 1942-1982년까지 두부를 만들어 팔았던 집으로 멀리서 두부를 사러올 정도로 유명했다.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나무 연리지
03연리지

유심히 봐야 알 수 있다. 평범한듯한 이 나무에는 뭔가 특별함이 있다. 연리지다.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나무가 하나가 되어 오랜 세월을 보내고 있다. 합쳐져 한몸이 된 연리지는 절대 다시 둘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회화나무와 귀목나무

금성교를 지나면 만날 수 있는 이 나무는 회화나무와 귀목나무가 서로를 껴안고 있다. 봄이면 두 종류의 잎사귀가, 가을이면 두 종류의 열매가 맺힌다. 하나의 몸이 되었지만 자신의 본질은 잃지 않은 것이다. 이런 연리지를 보며 사람들은 가슴절절한 사랑을 생각하거나 지극한 효심을 떠올리고, 요즘에 들어서는 다문화가정과 관련지어보기도 한다. 자연이 보여주는 조화는 우리에게 다양한 사유의 기회를 주니 짧은 걸음을 걸으면서도 마음에 많은 것이 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