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시_면앙정송순
- 날짜
- 2020.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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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76
- 등록자
- 관리자
俛仰亭 宋純 (면앙정 송순)
與林正子子順 여임정자자순
越海指在何日 千萬喜意 略敍於半朝漢拏吟邊 應遣一念留連間 頻寄玉音
월해지재하일 천만희의 략서어반조한나음변 응견일념유련간 빈기옥음
是余之望 因公忙了 大鑑前賀書 未暇修上 今晩書上 伏惟照達如何 前惠亭賦
시여지망 인공망료 대감전하서 미가수상 금만서상 복유조달여하 전혜정부
慾上板永傳 須於靜坐時更加斥正而來 毋負幸甚 謹問
욕상판영전 수어정좌시경가척정이래 무부행심 근문
丁丑至月初一日 俛仰老人
정축지월초일일 면앙노인
정자(正字) 임자순(林子順)에게 주다
바다를 넘는 것은 어느 날이 되시는지? 천만 기쁜 마음으로 한라산이 반만 보이는데서 대략 기술하고,
시를 읊는 곳에 응당 일념(一念)을 보내며 머무는 사이 자주 옥음(玉音)을 보내주시오.
이것이 나의 소망이오. 공무로 바빠서 대감 앞으로 축하 하는 편지는 닦아 올릴 겨를이 없다가
오늘밤에 써서 올리니 엎드려 이해 해주시기 바라니 여하(如何)오?
앞서 정부(亭賦)를 보내주셨는데 현판(懸板)에 올려 영구히 전하려고 하니,
모름지기 한가하실 때에 다시 다듬어 주시오. 저버리지 않으면 고맙겠소이다. 삼가 문안하외다.
정축년(1577) 동짓달 초하루 면앙노인(俛仰老人)
면앙정 송순(1493~1582) 은 전남 담양 출신으로 가사문학의 선구자이시며
이조참판 대사헌, 개성유수 우참찬을 지내셨으며 90세까지 장수하신 분이다.
56세 연하인 임백호에게 보낸 이 편지만 봐도 서로의 인품을 알 수 있다.
이글은 백호공께서 면앙정부를 써드린 것에 대한 고마음을 표시하고
과거 급제 후 제주목사이신 부친 절도공을 뵈러 가신 것에 대한 축하의 뜻도 있다 전한다.
1579년 송순선생 87세 때 면앙정에서 선생의 과거 급제 61주년을 축하하는 회방연(回榜宴)에서
백호공의 발의로 호조판서를 지낸 29세 연상의 이후백(李後白),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한 22세 연상의 고봉 기대승(奇大昇),
좌의정을 지낸 13세 연상의 정철(鄭澈)등 대 선배들과 함께 송순선생의 가마를 맨 일화는
조선조 500년 제일의 풍류였고 뛰어난 임백호의 전면목도 알 수 있다.
훗날 한말(韓末)의 문장가 이건창(李建昌)은 면앙정에 찾아와 당시의 멋진 광경을 회상하며.
금수담아아담수(今誰憺我我擔誰)” “나는 누구의 가마를 메며 내 가마는 누가 메줄 것인가” 라고 유명한 시를 남겼다 한다.
與林正子子順 여임정자자순
越海指在何日 千萬喜意 略敍於半朝漢拏吟邊 應遣一念留連間 頻寄玉音
월해지재하일 천만희의 략서어반조한나음변 응견일념유련간 빈기옥음
是余之望 因公忙了 大鑑前賀書 未暇修上 今晩書上 伏惟照達如何 前惠亭賦
시여지망 인공망료 대감전하서 미가수상 금만서상 복유조달여하 전혜정부
慾上板永傳 須於靜坐時更加斥正而來 毋負幸甚 謹問
욕상판영전 수어정좌시경가척정이래 무부행심 근문
丁丑至月初一日 俛仰老人
정축지월초일일 면앙노인
정자(正字) 임자순(林子順)에게 주다
바다를 넘는 것은 어느 날이 되시는지? 천만 기쁜 마음으로 한라산이 반만 보이는데서 대략 기술하고,
시를 읊는 곳에 응당 일념(一念)을 보내며 머무는 사이 자주 옥음(玉音)을 보내주시오.
이것이 나의 소망이오. 공무로 바빠서 대감 앞으로 축하 하는 편지는 닦아 올릴 겨를이 없다가
오늘밤에 써서 올리니 엎드려 이해 해주시기 바라니 여하(如何)오?
앞서 정부(亭賦)를 보내주셨는데 현판(懸板)에 올려 영구히 전하려고 하니,
모름지기 한가하실 때에 다시 다듬어 주시오. 저버리지 않으면 고맙겠소이다. 삼가 문안하외다.
정축년(1577) 동짓달 초하루 면앙노인(俛仰老人)
면앙정 송순(1493~1582) 은 전남 담양 출신으로 가사문학의 선구자이시며
이조참판 대사헌, 개성유수 우참찬을 지내셨으며 90세까지 장수하신 분이다.
56세 연하인 임백호에게 보낸 이 편지만 봐도 서로의 인품을 알 수 있다.
이글은 백호공께서 면앙정부를 써드린 것에 대한 고마음을 표시하고
과거 급제 후 제주목사이신 부친 절도공을 뵈러 가신 것에 대한 축하의 뜻도 있다 전한다.
1579년 송순선생 87세 때 면앙정에서 선생의 과거 급제 61주년을 축하하는 회방연(回榜宴)에서
백호공의 발의로 호조판서를 지낸 29세 연상의 이후백(李後白),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한 22세 연상의 고봉 기대승(奇大昇),
좌의정을 지낸 13세 연상의 정철(鄭澈)등 대 선배들과 함께 송순선생의 가마를 맨 일화는
조선조 500년 제일의 풍류였고 뛰어난 임백호의 전면목도 알 수 있다.
훗날 한말(韓末)의 문장가 이건창(李建昌)은 면앙정에 찾아와 당시의 멋진 광경을 회상하며.
금수담아아담수(今誰憺我我擔誰)” “나는 누구의 가마를 메며 내 가마는 누가 메줄 것인가” 라고 유명한 시를 남겼다 한다.